겨우 144개의 상(相 )으로 4천만명이 넘는 사람의 운세를 예언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한 것은 왜일까.총체적 점 중독증 이라는 한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서점가에는 역술 주역 등 운명론을 다룬 책들이 수천 여종으로 넘쳐나고 인터넷의 역술관련 사이트는 200여종에 이르는 현실이다.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증권가 주변에서도 어떤 품목이 오를 지 알아봐 달라 고 점쟁이를 찾는 투자자가 늘어 정확한 분석이 필요한 경제현상까지 미신에 기대는 풍조가 만연하다.
매스컴들도 이에 편승,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들은 너나 없이 오늘주간이달의 운세를 싣고 있고 김일성 사망을 예언했다고 알려진 ㅅ씨를 비롯 유명 점쟁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을 대기해야 한다.
얼마전 한 방송보도는 최근 들어 예언이나 운명과 관련된 업종에 흘러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1년에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90년대 들어 형성된 토착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을 좇는 시류는 이러한 경향들을 더욱 증폭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속되는 정국불안, IMF 경제위기 등 뒤숭숭한 사회분위기도 역술만능 바람을 수그러들지 않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의견들이다.
샤머니즘과 한국인
한국인들의 점 사주관상 토정비결 등 민간신앙을 따르는 성향에 대해 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샤머니즘 과 연결시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다.
샤머니즘은 한국땅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종교의 한 갈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민의 민간신앙의 핵을 이루며 기층문화를 형성해온, 기복(祈福) 등을 근본 목적으로 한 주술적 원시종교현상.
이 샤머니즘은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기도와 제사 점복과 주술로 민중들의 소원성취를 빌어주고 불안과 갈등을 해소해 주는 승화작용을 해왔다.한국인은 이같은 샤머니즘에 젖어 오랜생활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문제는 그 의식구조에 깔린 샤머니즘의 정신풍토다. 학자들이 지적하는 샤머니즘이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요인은 1. 귀신신앙 2. 운명신앙 3. 요행주의 4. 윤리의식의 희박성 5. 역사의식의 결여 6. 주술신앙 등이다.
이같은 샤머니즘에 기반을 둔 점 사주팔자와 같은 민간신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학자들은 체념과 나태심사행심 조장 책임성 결여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미신만능과 한탕주의를 꾀하고 만사를 팔자소관으로 체념하면서 신세타령이나 일삼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 민속학자는 특히 운명결정론적인 신앙에서는 혁명적인 기상이나 진취적인 개혁정신이 피어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복권으로 횡재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샤머니즘의 주술적 기복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정신의학자들도 일맥상통한 의견들이다. 점을 보는 심리에는 나 혹은 우리 식구만 안전하고 행복하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말한 한 정신과 의사는 이는 불확실한 미래와 현실에서의 좌절을 뚫을 생각은 않은 채 점을 매개로 피동적이며 의존적 삶을 살게 된다면서 쇠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생각과 비슷한 도덕성 운명개척 의지가 없는 사고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신흥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가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현세적인 이익 약속인 것도 바로 이같은 샤머니즘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신자들의 점집 찾기
그리스도교에서 보는 점술은 어떤 것일까.가톨릭에서는 점술을 기본적으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악마의 힘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경신덕(敬神德)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점술이 경신덕을 거스리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서도 점을 치는 행위는 대죄(大罪)를 구성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 신학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을 믿는 사람은 자기의 머리를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고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주기 때문이라는 히브리서의 성구를 인용, 이러한 말씀은 현대에도 어떤 것이 미신적 행위이며 부당한 행위들인지 자명하게 밝혀준다고 강조하면서 즉 누가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사주나 관상 점을 친다거나 운수를 바꾸기 위해 작명 한다거나 토정비결을 보는 것은 분명히 미신행위로 규정될 수 있다 고 밝혔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가톨릭신자 상당수는 점 궁합 사주 작명 등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신문이 지난 98년 창간 71주년을 맞아 실시한 가톨릭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97%가 민간신앙을 접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을 했다. 그리고 대략 10명 중 3명은 토정비결 사주 관상 점을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체적으로는 토정비결(322%) 사주 관상 점 (274%) 택일 작명 (165%) 궁합 (135%) 등이었다.
특히 가톨릭신문의 98년 조사는 10년 전 가톨릭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을 비교 조사한 것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민간신앙에 대한 접촉 경험자가 상당히 늘었고 한 두 번 접촉해 본 신자 비율의 증가가 민간신앙과의 접촉 경험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어, 많은 신자들이 단순한 호기심, 별 죄의식 없이 민간신앙과 접촉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최근 친지가 잘 아는 역술가라고 소개, 점을 본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경기도 수원의 김젬마(30)씨는 그냥 남편의 사주를 놓고 성격 진로문제를 얘기 했다면서 사주는 하나의 통계상으로 사람의 성격 등을 구분하는 것이라 알고 있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H고 밝혔다.
▲ ※신자들의 민간신앙 접촉 경험(98년 본보 설문)
마산교구 양덕동 주교좌본당 주임 최영철 신부는 점보기 사주 관상 등은 죄다 아니다 하기 이전에 건전한 신앙생활을 저해하고 하느님 이외의 것들에 호기심을 두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최신부는 주변의 풍조들에 휩쓸려 사주를 보러가거나 점을 치는 경우들도 사목현장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신앙인들은 그러한 상황 안에서 신앙인 본연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 지 식별력과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면서 현재와 같이 운명론적 역술 현상이 마치 일상(日常)적인 것처럼 되어버린 상황에서 올바른 신앙적 가치관을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부언했다.
교회 내 전문가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점 역술 사주 등 민간신앙에 편승하는 경향은 개인적으로 올바른 신앙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데서도 찾을 수 있지만 한국 교회 전체 문제와도 맥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꼽고 있다.
내적 성장이 미흡한 한국교회 상황이 큰 주변 원인으로 작용한 가운데 사회전반에 팽배한 이기적이고 물질적 가치관에 신자들이 물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는 견해다.
결국 이는 신앙의 모습이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로 변질돼 표면화된 것이라고 요약된다. 서울대교구 사무처 홍보담당 정웅모 신부는 대형화 익명화된 현재의 교회는 신자들간 사목자 신자들간 친밀도를 떨어뜨리게 됐고 이러다 보니 신자들은 삶의 아픔을 들어주고 인간적으로 동감해주고 고민을 쪽집게처럼 짚어주는 민간신앙에 더 마음을 두게 되는 경우가 많고 집안 내 우환, 사업실패, 자녀 진학문제 등으로 심신이 나약해져 있을때는 하나의 돌파구로 점쟁이들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부언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개인적인 올바른 신앙관의 형성과 그리스도교적 영성의 심화 등으로 모아진다.인간이 신을 알고 자기의 비참(悲慘)을 모르면 오만(傲慢)에 빠지게 되고 자기의 비참만을 보고 하느님을 모르면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중용을 찾는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비참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