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국회에서 말이 먹히는 사람을 찍어야지 지역사회가 발전하지』
경기도 남양주가 고향인 ㅎ씨(분도46), 할아버지부터 아들까지 4대째 이 곳을 지켜와 지역 사회의 터줏대감으로 인정받는 그는 요즘 혼란에 빠졌다.
줄곧 여당 국회의원 후보를 밀어온 그는 올해는 누굴 찍어야 하느냐는 주위의 물음에 난감해질 때가 적잖다. 특히나 그의 난감함은 지난 1월 24일 총선시민연대가 이른바 67명의 공천반대 인사 명단을 발표한 이후 더욱 커지고 말았다.
그가 밀어온 여당 중진의원이 그 명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 처음 치르게 되는 국회의원 선거인 4.13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에 의해 야기된 초유의 사태로 ㅎ씨와 같은 고민에 빠진 이들이 적잖게 생겨나고 있다.
몇몇 시민단체로부터 시작된 낙천낙선운동은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지며 수그러들줄 모르고 있다. 1, 2차에 걸쳐 총 113명의 공천반대 인사 명단이 발표된 직후 우리 사회는 선거라는 일회적인 행사를 두고 과거에는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국이 들끓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시민단체에 국한되지 않고 각계 각층으로 이어져 전국 곳곳에 지역별 총선연대가 결성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번져 전 국민적인 불복종운동의 모습마저 띠고 있다. 이런 현실에 이르게 된 데에는 누구나 인정하듯 잘못된 정치풍토, 이를 조장한 정치인이 가장 큰 몫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단체 이기주의나 명단발표 행위의 불법성 여부 등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어 판단을 더욱 힘들게 한다. 또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해명이 수긍할 만한 부분이 없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키는 면이 있다.
그러나 명단 작성과정의 객관성 여부를 떠나 발표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여론조사기관마다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80%를 상회하고 있는데다 총선체제를 정비하는 각 당이 이를 공천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하고 있어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일련의 국면은 불신을 자초한 정치권의 일대 혁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총체적인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신자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이 혼란은 다른 종교계와 단체들이 발빠른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더욱 커지고 있다.
낙천인사 명단 발표 후 곧이어 불교계가 21개 단체로 2000년 총선불교연 대를 발족시키고 지역감정을 조장해 사회화합을 깨뜨린 이들에 대한 반대운동에 나선 것이나 22개 개신교 단체들로 구성된 기독교 총선연대가 시국기도회를 여는 등 현재 종교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국면, 여기에 보수성향의 50여개 사회단체들이 결성한 총선 보수국민연합이 자체 기준에 따라 낙선운동을 벌이기로 하는 등 다양한 움직임들로 신자들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회는 정치라는 큰 바다에 떠있는 배 라는 인식 아래 전국 교회 단위로 부패정치 및 지역 감정 청산을 위한 교육자료 개발과 목회자 서신, 현수막 걸기 등의 안내활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교회 청색운동사업, 부패없는 선거를 위한 청색선거기도문 배포 등 국민주권 회복을 하느님 주권 회복으로 바라보는 개신교계의 움직임은 전 종교계에 자극제가 되고 있다.
또한 기성 정당들에 국한됐던 선거판에 민주노동당, 청년진보당 등 두 개의 진보정당이 한꺼번에 출사표를 던지는 등 우리나라 근현대 정치사에 처음 벌어지는 현실 앞에 당황하는 것이다.
특히 올 총선에 규정력을 발휘 하게 될 현행 선거법이 시민단체와 국민의 여론에 밀려 수일 간격으로 열린 국회에서 조변석개하는 등 과거에는 볼 수도 없던 일이 벌어짐으로써 지켜보는 국민들은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낼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도덕적인 힘으로 정치공동체가 더 이상 불의에 빠지지 않게 하고 더 이상 부패하고 타락하지 않게 해야 하는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책임이 있다(200주년 사목의안 중)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움직임이 교회 내에서도 일고 있다.
가칭 천주교 총선연대라는 이름 아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롯한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그리고 몇몇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 수십개의 단체가 참여와 공조를 모색하고 있으며 2월중으로 정식 발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라는 사회활동을 계기로 보이고 있는 이같은 움직임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해 혼란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시민의 보편적인 권리행사로 인식되고 있는 선거는 실제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서야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된 제도다.
20세기 초반까 지만 하더라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광역화하는 인간 생활 속에서 보편적 사회참여 행위 중의 하나인 선거는 교회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생명을 새롭게 하는 일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신자들은 그간 전 사회적으로 팽배한 냉소주의에 젖어 자신들의 고귀한 권리이자 의무를 가볍게 생각해온 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가오는 4.13 총선에 대한 참여는 우리 사회에 짙게 깔려있는 반생명적, 반그리스도적 문화를 떨쳐버리고 세상을 하느님의 생명으로 채우는 일의 일환이 될 수 있다.
교회가 보이고 있는 사회현실 참여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가. 교회는 복음전파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참여를 책임으로 떠안는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고, 인간활동의 모든 내용을 규명하는데 있어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책임을 존중하고 장려한다는 사목헌장(76항)의 지침은 대표적인 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해 이런 자세를 취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느님 나라 운동의 목적이 사회운동의 목적인 전인적 인간완성과 뜻을 같이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교황청 정의평화 위원회는 현실교회가 지니는 의의를 사회 현실을 복음에 비춰 평가하고, 사회 안에서의 실제적인 행동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에 앞서 현실에 대해 교회의 책임은 없는 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같은 반성의 당위성은 현직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20%가 넘는 60여명이 신자이며 공천 반대 명단에 오른 이들 중에도 상당수 신자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천년의 문턱을 막 넘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신자들이 자신의 소명을 새롭게 깨닫길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개인뿐 아니라 세상의 회개와 새로남이 비롯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로부터 세상의 영혼으로 스스로를 인식해온 신자들은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해방의 기쁜 소식을 늘 새롭게 세상에 불어넣을 것을 요구받아 왔다.
따라서 신자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나라의 정치현실 한가운데 서길 요청받고 있는 셈이다.사회 발전을 위한 방향 제시 와 사회 비판 역할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교회, 민주화 도정에서 꺾일 줄 모르는 외침으로 사회에 큰 반향을 낳아온 교회는 이제 하나된 목소리를 내야 할 사명을 역사로부터 부여받고 있다.
예수께서 오셨던 당시의 문제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 모든 신자들의 마음에 뿌려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은 세상 한가운데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교회는 이 길에서 A정의와 평화, 그리고 형제애의 원리에 기반할 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총선이라는 정치현실 속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찾고 이들과 함께 하려는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선량을 택하는 것이 일차적인 의무로 지워진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뽑힌 이들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지는 토양을 닦는 것이 신자의 의무라 할 수 있다. 구약의 예언자 시대로부터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자들의 실천이 사회발전의 근본 원리였으며 교회가 지니는 힘의 바탕이 됐음은 지난 역사가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다. 과거의 패배주의와 냉소주의를 깨고 나라는 한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하느님 나라를 함께 해도 좋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 선한 이웃을 세워야 하는 책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부패로 세상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이, 지역 감정 등을 부추겨 올바른 세상의 평화를 그르치는 이, 부족한 자질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이…. 이들을 걸러낼 눈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깨어 있어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힘있는 실천으로 드러나야 할 때이다.
◆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겸 상임집행위원장 장원씨
냉소주의·무관심이 가장 큰 악덕
21세기는 참여 민주주의 시대
다가온 4·13 총선을 향해 각 당의 출마 후보자들 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는 가운데 이들보다 열심히 뛰는 사람이 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겸 상임집행위원장 장원(안셀모·충남 금산본당)씨. 그는 올 선거에 대한 참여가 하느님 나라 운동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의 사무총장이기도 한 장 대변인은 『하느님이 지으신 피조물인 환경이 고통을 받는데 무관심할 수 없듯이 그릇된 정치환경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들이 있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신자들의 참여가 하느님이 생명을 주신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낟.
그리스도인의 행위 하나 하나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며 하느님이 뿌려주신 하느님 나라를 가꾸는 신성한 행위라고 박히는 그는 21세기는 참여민주주의의 시대라고 강조하고 냉소주의와 무관심이 가장 큰 악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세속이 나서지 못하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힘으로 나서 세상을 바꾼 지난 역사의 경험들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장 대변인은 현재의 정치상황이 우리 시대에 선포될 목음이 무엇인지 묵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있는 정치판의 부패를 신앙인들의 개인주의에서 찾는 그는 세속의 뜻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선량이 아닌 하느님 뜻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일을 맡기는 것도 신자들의 의무라고 역설한다.
『세상과 모든 사람이 생명력을 되찾는데 기여하는 교회, 그리고 그 길에 아낌없이 몸을 바치는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나갔으면 한다』고 밝히는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곳이 교회라며 적극적인 참여와 사랑을 호소했다.
『스스로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새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말하는 장 대변인은 2000년대의 벽두, 대희년의 길목에서 맞는 총선이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길이되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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