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9년 8월 15일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가 일본 땅을 밟으면서 일본 가톨릭 교회가 시작된다. 그러나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선교사 추방령과 함께 그리스도교 금지령을 내리고 박해를 시작한다. 1597년 2월 5일 6명의 외국인 선교사와 20명의 일본인 신자가 나가사키(長崎) 니시자카(西坂) 언덕에서 순교하고 1862년 교황 비오 9세는 이분들을 성인반열에 올린다. 이분들을 기리기 위해 시성 1백주년 때인 1962년 순교지 니시자카 언덕에 「일본 26성인 기념관」이 세워졌다.
「니시자카 공원(公園)」이란 팻말을 오른쪽으로 하고 계단을 오르면 또 다시 시(市) 지정 사적임을 알리는 「일본 26성인 순교지」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안내판을 끼고 돌면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기념비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가로 17m 세로 5ㆍ8m의 화강암 비석에 26성인의 동상이 새겨져 있다. 이 기념비 뒤에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고 기념관 오른쪽에는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 양식으로 두 개의 기둥이 우뚝 솟은 「예수의 성 필립보 성당」이 서 있다. 뒤돌아서니 한 예수회 신부가 일본인 부자(富者)의 요청을 받고 조성했다는 나가사키 시가지와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다양한 유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성물 성화 성작 편지 화폐 도서 전례서 기도서 민속품 등에서 성인 유해까지, 일본 가톨릭 교회 초기 소위 「기리시땅」 시대 유물과 몇 세기 전 유럽에서 건너온 전례서까지 하나같이 귀중하고 의미있는 「보물」이었다.
정교한 조각을 자세히 볼 수 있게 성작이나 공예품의 한 부분에 확대경을 설치해 놓은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띄었다. 또한 모든 유물을 교황청에 등록해 쉽게 유실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놓았다. 물론 관리자인 예수회의 규정에 따른 것이지만 얼마 전 한국 교회의 유물들이 사라졌느니 나타났느니 하는 홍역을 겪은 뒤라 새삼 체계적인 유물 관리의 중요성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종교 박물관」으로서의 역할보다 지역 「문화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었다. 일본 사회의 특성 때문인지 일본 사람들은 26성인 순교 기념관을 종교 시설로 보지 않고 나가사키 지역에 있는 하나의 박물관으로 본다. 따라서 순교 기념관은 일본 중고생들의 수학여행 경유지로 각광 받고 있었다. 특히 방학 때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관람한다.
기자가 기념관을 찾았을 때도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줄을 이었으며 그들은 한편으론 신기한 듯, 한편으론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유물들을 둘러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른다는 한 학생은 십자가에 매달린 순교자상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하고 『저렇게 까지 죽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아!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알리시는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유물 관리 측면에서는 역시 소홀함이 많았다. 환기 장치는 선풍기가 고작이었고 2층에 모셔진 성인들의 유해는 밀봉장치 뿐이었다. 15세기 스페인에서 양피지로 만든 대형 그레고리오 성가 책은 밀봉조차 안되어 있었다. 기념관 측에서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경제력이 미치지를 못했다.
17세기 께 한 일본인 화가가 종이에 그린 서양풍의 성모 그림은 세계적으로 2장 뿐인 희귀품으로 고무로 밀봉된 특수 케이스에 보관되어 있었다. 자국민이 남긴 예술품이라는 인식 때문이지 나가사키시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부분 투자하고 있었다.
그밖에 1546년 프란친스코 사베리오가 포르투갈 왕에게 보낸 편지 원본, 16~17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만든 청동 피에타상, 박해를 피해 숨어살며 불상으로 위장해 만든 성물 「마리아 관음상」, 16세기에 제작된 나무 조각품 「성모자」 등이 눈길을 끌었으며 6~7세기 께 한국에서 가져간 청동 미륵반가사유상도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예수회 출신 세 분 성인의 유해는 「예수의 성 필립보 성당」 제의실에 모셔져 있었다.
일본 26성인 순교 기념관은 예수회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었지만 땅은 시 소유였다. 또한 시에서 지정한 지방 유적지여서 정기적인 검사와 함께 보조가 되고 있었고 성모 그림과 같이 특정 유물을 지정, 관리하는데 시에서 투자하고 있었다. 지방정부의 보조로 종교 시설을 운영하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지원 규모가 크지 않고 많은 부분에 있어 관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기념관측에서 마냥 달갑지만은 안은 듯했다.
시 지원 외에 수도회 보조금, 개인 기부금, 입장료 수입 등으로 기념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넉넉지 못한 예산 때문에 관리 운영이 힘들어 보였다. 시에 넘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종교시설이 아닌 정말 하나의 문화 시설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수도회 측에서는 우려했다. 그나마 종교적인 정신을 심기 해서는 수도회가 관리하고 운영해야 된다는 설명이다.
일본 26성인 순교 기념관은 분명 일본 가톨릭교회의 최대 순교 성지이다. 26 성인 순교후 도쿠가와 시대 200여 년간 더욱 잔인해진 60여 차례의 박해가 자행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교회의 관심은 미미했다. 타교구는 물론 나가사키 대교구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순교신심이 한국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지난해 나가사키 대교구를 중심으로 일본 26성인 순교 400년제가 성대하게 열렸지만 기념관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더했다.
1981년 2월 26일 기념관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오늘 나는 순교자들의 언덕에서 사랑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싶다. 이 성스러운 곳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언했다. 전 세계를 향해 이 기념비가 사랑에 관해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해 계속 말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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