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곤고(困苦)함도 분출하는 대희년의 희망과 들뜸을 막지 못했다.
청명한 하늘이 가을빛을 완연히 드러낸 10월 12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진 서울대교구 노인대학 연합회(회장=박고빈 신부) 주최 「제14회 노인의 날」행사에서 울려 퍼진 은빛 물결의 함성에는 아직도 젊음의 기운이 흠씬 묻어 있었다. 하느님의 지혜를 그 누구보다 많이 체득한 이들이 펼쳐낸 마당은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 주기에 족했다.
나이를 잊은 앙증맞은 복장에 군데군데 흰머리를 드러낸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이날은 자신과 자신의 삶을 확인 하는 일년 중 가장 반가운 날. 만나는 얼굴도 매년 다르고 해를 거듭할수록 얼굴의 주름이 깊어가지만 그조차 반가움 으로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앳된 몸짓, 서툰 동작이 오히려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노인대학 학생들에게 이날은 단순한 놀이의 장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이다. 1년여를 갈고 닦은 실력이건만 또래들의 앞에 서고 보면 웃음이 먼저 나오고 만다. 그러나 이날을 웃음으로 보낼 수 있게 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가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 이토록 의지하고픈 이들이 많은 줄 몰 랐어요』운동장에서 만난 일흔이 넘은 할머니는 쑥스런 웃음으로 답한다. 그러나 시간이 무르익을수록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벌써부터 헤어질 걱정이 앞선다. 『쉽사리 나다니지도 못하고…. 그래도 이런 자리라도 있으니 살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잖아요』지난해보다 1000여명이나 많은 5000여 친구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떼는 노인들에게서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반가웠어요. 내년에도 꼭 봬요』본당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지혜를 나눔으로써 더 큰 지혜로 하느님께 나아가려는 몸짓. 이런 노력들이 무상한 듯한 시간에 묻혀 또 1년을, 더 많은 세월을 나야 한다는 사실이 이들에겐 더욱 힘들고 아쉬운 현실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겠다』는 다짐만은 늘 새롭다. 그래서 해를 거듭할수록 노인들의 발걸음에는 힘이 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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