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98년 8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을 수마가 할퀴고 지나갔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 마저 한순간에 휩쓸어간 비정한 하늘을 바라보며 수재민들은 넋을 잃었다.
하지만 얼마 뒤 우리는 아직도 따뜻한 정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을 확인했다. 피해 지역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의 자원 봉사의 손길이 줄을 이었고 생필품을 비롯한 각종 물자 지원과 수재 의연금이 끊이지 않았다.
8월말경 모금된 수재의연금은 450여억원, 96년 연천 파주 등 경기 북부 수해 때 모인 336억원의 최고 기록을 넘겼다. 96년에 비해 대기업들의 「자선」이 훨씬 기대에 못 미쳤음에도 불구 하고 '십시일반' 의 정성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물품 기탁은 더 기록적이었다.
96년에는 11t 트럭 133대분에 해당하는 옷가지와 음식이 모아 진데 비해 98년에는 그 6배가 넘는 830대분이 답지한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한푼이 아쉽고 일자리조차 불안한 IMF 위기 때였다. 내 입에 풀칠하는 것도 힘겨운 시절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았다.
여기에는 방송 3사의 ARS 모금이 크게 기여했다. 그것만으로 100억, 한 번 통화에 1000원이 기탁되니까 무려 1000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국의 모든 세대가 빠짐없이 한 통씩 걸었다는 얘기가 된다.
사랑의 개미군단
그야말로 「사랑의 개미군단」이다. 흔히 「개미군단」이라 하면 증시에서 소액투자자들을 얘기할 때 지칭하는 말. 우리나라 인구 중 15명 중 1명꼴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으며 코스닥 등록법인 주주 가운데 개인투자자는 113만3971명으로 전체의 99.4%를 차지해 지난 해 코스닥시장에서의 「개미군단의 힘」을 실감케 했다.
세계 최대의 뉴욕 증시를 움직이는 무게 중심도 이제는 기관 투자가에서 개미군단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개미군단」은 하나씩 떼어놓으면 무력한 개인이지만 같은 지향을 갖고 「인해전술」로 움직일 때에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이들 개미군단 투자자들 중에서는 수익을 위한 투자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기도 한다. 올초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벤처기업 주식을 모아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일명 「사랑의 2000주 모으기운동」이라는 이색캠페인을 펼쳐 현금 20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는 결코 많은 돈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을 갖고 있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삶 속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례들을 심심치않게 보고 듣는다.국내 최초의 나환우 지원사업기관으로 설립돼 올해 50주년을 맞은 성나자로 마을. 이 마을이 있기까지는 뒤에서 이들을 후원한 라자로돕기회의 공이 컸다. 지난달 18일 설립 30주년 기념행사를 치룬 라자로돕기회 회원은 국내 1만 8940명, 국외 2661명 등 총 2만 1201명에 달한다.
25년전인 1975년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이었던 시흥동에서 37평의 작은 집으로 시작했던 전진상복지관은 현재 하루 200여명의 환자들이 내방하고 지난 10년 동안 무려 14만명의 환자들이 이용하는 지역사회의 든든한 이웃이다. 420여명의 봉사자와 5000여명에 이르는 후원자의 힘이다.
작은 정성 실천
사실 곤궁에 빠진 이웃들을 돕는 사람들은 그렇게 부유한 사람들은 아닌 경우가 많다. 가톨릭신문이 지면을 통해 이웃의 도움을 청하는 「호소기사」를 보도하고 나면 전국에서 크고 작은 정성들이 쏟아져 들어 온다. 예금 통장으로 입금하는 정성들을 보면 대개가 수 천원에서 1, 2만원이다. 가끔 10만원 이상의 「거금」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쌈짓돈을 보내주는 독자들 중에는 연로해 자식들에게 푼돈을 용돈으로 타서 쓰는 할머니도 계시고 실직을 당해 파출부를 나가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의 사정을 듣고 생활비를 쪼개는 주부도 있다.
1년에도 몇 차례씩 5000원이나 1만원이나 2만원씩 보내주는 한 「단골」독자는 『나 먹고 살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굶어본 사람이 그 설움을 알지 누가 알겠나』며 앞으로도 한푼 두푼 사정이 되는대로 성금을 보낼 생각이라고 한다.
물론 이들의 작은 정성만으로 우리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이 모두 도움을 얻기는 힘들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황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
모든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경제 위기. 또다시 몇 년전의 IMF 위기 상황을 능가하는 더 큰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더 극심하다.
흔히 20대 80이라는 말로 일컬어지는 심각한 빈부격차. 그것이 주는 위기감은 실로 엄청나다. 다같이 고생하고 다같이 가난할 때에야 함께 협력해서 위기를 이겨나가면 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누리고 대다수가 가난할 때 그것은 큰 사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자선, 생활로 정착돼야
나눔과 자선은 신앙인의 의무이다. 우리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의무는 더욱 무거워진다. 세상에 굶는 설움보다 더 큰 설움은 없다. 더욱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끼니를 굶은 것은 그 사회의 비정함을 말해준다.
가난해서 밥을 굶는 아이들이 23만여명이라고 한다. 공식 통계가 그러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차가운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달랠 것이다. 홀로 사는 노인들, 가난 때문에 혹은 그저 모시기 싫어서 버려지는 노인들도 많다고 한다.
돈이라도 많으면 먹고 살 걱정이라도 안 하겠지만 노구를 이끌고 폐휴지라도 주워야 입에 풀칠을 한다. 기력이 떨어 지면 그조차도 어려워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또다시 구조조정의 칼날에 쓰러진 실직자들. 거리와 산을 헤매는 가장들도 늘고 있다. 장애우들의 생활고는 이미 오랜 이야기이다. 정에 약한 우리 민족들은 남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면 결코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개미군단의 힘은 어쩌면 이러한 정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단지 정 때문만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이 인간답게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가며 살아 갈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제도적인 장치까지를 기대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위기 때마다 발휘되는 개미군단의 위력이 상시적인 사회적 장치로 기능해야 할 것이다. 서구 선진사회의 경우 가난한 이를 위한 기부행위나 개미군단의 위력이 하나의 사회적인 장치로 자리잡고 있다.
자원봉사의 천국인 독일은 두 번에 걸친 전쟁 경험과 이웃에 대한 관심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바탕에 깔려 있다. 독일 사회에서 대개의 시민들이 사회단체등에 기부하거나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나서는 일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98년 성탄절, 한 불우이웃돕기 콘서트를 생방송하자 불과 3시간 동안 우리 돈으로 무려 2조 7000억원이 모금되기도 했다. 대개의 복지시설이나 병원 등에는 정규 직원보다 자원봉사자의 수가 훨씬 많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독일인의 34%, 약 2200만명이 무보수 명예직을 갖고 있으며 여가 시간 대부분을 자원봉사활동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두 광주리 기적
우리 민족은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전통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성서에서 예수가'오천명을 먹이신 기적'과도 맥을 같이 한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만으로 예수는 여자와 어린이들외에 남자만도 5000명을 먹였다. 그리고 남은 것을 모으니 족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인간다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열두 광주리」의 기적이 언제나 가능한 사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이 발생하기 위해서 우리 신앙인들은 이른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정신을 바탕으로, 아울러 자비하신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자선의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열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 교회의 가르침은?
“가난한 이들 위한 자선은 그리스도께 행한 것”
나눔이나 자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자신이 쓰고 남는 것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자선이 하느님의 자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더욱 더 전인적인 투신을 요구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때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자신에게는 현재 필요하지 않는 「남는 부분」을 자선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황 레오 13세도 노동헌장에서 이런 의미로 언급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취할 권리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넉넉한 재화를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며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있고 쓰고 남는 것만을 주어서는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성서에 나타나는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에 바탕을 둔다. 구약에서는 율법에서 수확할 때 이삭을 남겨야 할 의무, 삼년마다 소출의 십일조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저장해야 할 의무 등이 언급돼 있고 토비트서는 『가난한 사람을 만나거든 그가 누구든지 외면하지 마라. … 네가 가진 것이 적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적은대로 자선을 베풀어라』라고 강조한다.
신약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활동 자체가 자선의 의미를 갖는다. 예수는 『굶어서 길에서 끄러질지도 모르는』배려까지 하면서 자선의 실천을 미루지 말고 필요할 때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자선을 충실히 실천한 사도 공동체는 그래서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사도 4, 34).
교부들은 자비를 베푸는 일과 자선을 베푸는 일을 거의 동일시하고 복음을 바탕으로 자선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했다. 헤르마스는 「목자」에서 가부, 고아, 극빈자, 나그네, 노인들을 도와주는 것, 죄인을 교화하고 채무자를 괴롭히지 않는 것 등을 열거했다.
교부들은 자선의 영적 의미를 묵상하고 자선의 실천이 죄의 용서를 가져온다고 천명했다. 아울러 교부들은 자선이 기도를 필요로 하며 기도는 자선을 이룬다고 지적하고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와 단식은 아무 힘이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자선은 바로 그리스도께 행한 것이며 따라서 자선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본다고 말했다.
오늘날 자선의 현대적 의미 중 가장 핵심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이다. 혹자는 이러한 선택을 해방신학이나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는 유리된 것으로 치부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자유의 자각」(1986년)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배타주의나 분파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교회의 존재와 그 사명의 보편성을 천명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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