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죽음은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원형대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간다는 고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계시하신 진리, 즉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고백하는 교회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잊지않고 기도한다. 죽은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이 신심은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신심 중의 하나로서, 11월을 위령 성월로 정하고 교회 전체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성서에 나타나는 「죽음」을 살펴보면 죽음은 「극도의 불의에 대한 배상」으로 간주되어 왔고(욥 18, 5~21 시편 37, 20), 대죄인에게는 죽음을 내렸던 것이다(에제 18, 20). 하느님은 인간을 죽지 않도록 창조했으나(창세 2, 17), 죽음은 악마의 질투로 인간의 범죄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창세 3, 19). 로마서 5장 12절에도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죽음을 불러 일으 켰다」라고 씌여있으며 이에따라 인간은 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게 되는 것이다(히브 2, 15). 그러나 성서는 이러한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의 죽음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마태 10, 20 루가 12, 4~5). 영혼의 죽음이란 대죄(大罪)로 인해 영혼의 생명인 성총을 잃고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제2의 죽음」이라 한다(묵시 2, 11).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삶에 연연해 하지 말고 이와같은 「제2의 죽음」을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 그리 스도와 함께 부활을 통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전력해야 할 것이다. 바오로 사도도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내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립비 1, 21)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하나의 위기인 동시에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생물학적인 의미 보다 부활사상에 중점을 두어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이끌어 주는 「희망의 서곡(序曲)」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대결하여, 죽음이 그리스도를 이겼 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죽음을 쳐 이기신 것이다. 이때부터 죽음은 더 이상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완성의 과정이요 승리의 상징이며, 사랑과 구원의 도구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로써 우리도 그리스도의 그 새로운 길(파스카의 신비)을 따라 생명과 죽음을 성화(聖化) 하면서 우리 삶과 죽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 것 이다(사목헌장 2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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