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손 한번 잡아본 게 전부였는데,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그냥 바라본 게 전부였는데…. 그렇게 보내 버렸어요. 화목한 가정으로 보내주세요. 부족한 제가 우리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일 뿐입니다』
한 미혼모의 편지다.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태어난 지 이틀만에 입양원으로 옮겨지는 아이들. 미혼모가 낳은 입양아는 올 상반기만 2158명으로 입양아 전체의 93%를 차지하고 있고 매년 5천명 이상의 미혼모가 아기를 낳고 있다.
이렇게 미숙한 성의식 또는 성적인 폭력으로 인해 양산된 많은 미혼모들이 아이를 고아원이나 입양기관에 맡기고 있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예쁜 여자아이」를 선호하는 양부모들에 의해 한살이 넘은 남자아이들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가정을 찾지 못한 채 한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샛별이, 진주, 현우, 한솔이, 희망이, 소망이…』
곤히 자고 있는 평화로운 얼굴만큼이나 예쁜 이름들. 태어 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입양원으로 들어와 지어진 이름들이지만 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주고 싶은 봉사자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생후 20일 된 신생아실의 현우는 며칠 전 감기에 걸렸다. 열 때문에 발개진 얼굴의 현우는 잘 뜨지도 못하는 눈에 눈물이 고여서 작은 팔을 허둥대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 보육사나 봉사자가 가끔씩 와서 안아주고 얼러주지만 면역이 약한 아기들이 다 같이 감기에 걸린 터라 현우만 안아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안에서 보호받고 성장할 수 있는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다.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국내 입양 전문기관인 성가정입양원(원장=이정자 수녀)에는 한 해 평균 100여명 이상의 아이들이 입양되고 있다.
89년 입양원이 문을 연후 10년간 이곳을 거쳐 입양된 아이만 1400명에 이른다. 국내 입양이 해마다 늘고는 있지만 해외 입양에 비하면 아직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더구나 이중 공개적 국내 입양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 국내 입양의 99%는 혈액형이 맞는 신생아를 데려다 직접 낳은 것처럼 가장하거나 이사까지 하는 비공개 입양이다. 까다로운 입양조건과 절차도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막는 요인중의 하나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뿌리 깊은 혈통주의와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요한이와의 인연
그런 가운데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위해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보장된 노후를 포기하고 입양을 결정한 김재민(50·안드레아·창4동 본당)-임향순 (47·엘리사벳)씨 부부.
이들은 2년 전 요한이가 100일도 안 됐을 때 성가정입양원의 위탁모로 맡아 키우면서 요한이와 인연을 맺었다. 입양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부부의 적지 않은 나이와 대학교 4학년, 1학년, 중학교 1학년 세 딸을 두고 있는 이들에게 입양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시 공무원인 김씨와 부인 임씨가 빠듯한 살림에도 정성스레 요한이를 맡아 키운지 1년 3개월쯤 지나 입양원에서 요한이를 원하는 양부모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들보다 젊은 부부에게 가서 요한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부부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요한이를 떼어놨고 요한이가 떠나던 날 부부는 물론 요한이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꼈던 세 누나들까지 온 가족이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요한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치우지 못한채 계속 눈물만 흘렸단다.
『그래도 요한이가 새 가정에 가서 행복하게 살길 바랐죠. 그런데 잘못돼서 다시 입양원으로 돌아왔단 얘기를 듣고 요한이는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보내주신 선물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아이를 위탁하는 「사랑의 부모」로 요한이를 다시 만났고 결국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요한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8월 한쪽 팔이 없는 장애를 가진 재혁이를 입양한 이정숙씨(가명). 입양원에서 데려 온 후 한동안은 핏덩이 때 버려졌던 기억을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또 씻겨낸 자리를 채울 사랑을 확인하겠다는 듯 밤마다 찢어지는 듯한 울음 소리로 식구들의 단잠을 깨우던 재혁이. 가슴 아파하며 재혁이의 아픔을 함께 참아 낸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재혁이는 차차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재롱을 피우는 보통 아이의 모습을 찾아갔고 어느새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이가 됐다.
입양을 망설이는 이들이 갖고 있는 편견은 입양아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아이를 사랑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만 입양을 경험한 양부모들은 하나같이 그런 걱정이 기우라는 사실에 입을 모은다.
또 입양 후 이들의 대부분은 더욱 화목해진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성가정입양원은 이런 걱정들을 해소하고 입양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기 위해 지난 5월 입양 부모들의 모임인 「참사랑 모임」을 발족, 입양 후 양육에 관한 문제를 함께 나누고 있다. 또한 장애아들의 입양을 늘이기 위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마련을 추진 중이다.
성가정 입양원 이정자 원장 수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을 찾아주는 일』이라며 『파괴된 가정에서 탈선한 아이들이 상당수 미혼모가 되는 현실을 생각할 때 가정을 지키고 살리는 데 모두가 힘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수녀는 『국내 입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편견도 없어져야 하지만 이와 함께 입양가정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입양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공익광고의 문구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더 이상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성가정 입양원(입양문의)=(02)764-4741∼3, Holy 4741@par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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