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찬 기다림의 때인 대림시기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이미」완성된 구원과 아울러 모든 신앙인 안에서 장차 실현돼야 하고 마지막날 그리스도가 재림해 완료하실 구원의 「아직」사이의 긴장 속에서 구세주를 깨어 기다리는 때이다.
기다리는 마음은 하나이지만 빛으로 오실 그리스도가 지니는 의미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굶주린 이에게는 먹을 것이, 헐벗은 이에게는 입을 것이, 묶인 이에게는 해방이 필요하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병자, 입양원의 아기, 결식아동 등 이 시대 가난한 이들의 간절한 기다림을 찾아나선다.
2천년전 예수의 탄생, 죽음과 부활이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캐나다 감독 데니 아르캉은 그의 영화 「몬트리올 예수」를 통해 생명을 나누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인 장기 이식으로 그 의미를 드러낸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영화 속 연극에서 예수역을 맡은 주인공 다니엘이 사망후 장기를 이식하고,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랑이자 생명인 예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은 대림시기에 더욱 간절해진다. 이웃에게 작은 예수가 되어주는 사랑의 행위가 바람 앞의 촛불같은 자신의 가냘픈 생명과 곧 이어지는 이들에게는 더욱이 그러할 터.
신장이식을 기다리는 김모씨(53.마르코)의 대림시기는 그러한 까닭에 기다림으로 더욱 깊어지는 시기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그는 이미 지난 87년 신장이식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식된 신장에서 거부반응이 나타나 다시 한번 이식 수술을 받아야했고 95년 병원에다 신장이식을 신청했다.
오래전 등록해 대기자 순위가 빨랐던 그에게는 다행히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받을 기회가 세 번 주어졌다. 이제 이식만 하면 일주일에 세 번씩 온 몸의 혈액을 정화하는 혈액투석으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술비 부족으로 매번 다른 환자에게 기회를 넘겨야했고 이제는 장기이식대기자 명단에서 순위를 기약할 수조차 없게 돼 버렸다.
87년 신장이식수술 후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김씨에게는 이제 희망과 함께 신앙도 사라져가고 있다. 아내와 두 아들의 가장인 그는 『치료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닌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억지로 연장시키는 이러한 삶이 늘 불안하고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견디기 힘들다』고 고통스럽게 토해낸다.
인생을 한창 꽃피울 나이에 간이식수술만을 온 삶의 희망으로 삼고 있는 권모씨(25·미카엘). 이식 외에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지만 뇌사자의 장기를 기다리기는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일이다. 검사결과 가족의 이식도 불가능한 상태. 한달에 백만원이 넘는 병원비는 합병증으로 점차 다른 장기마저 병들어가는 것에 비한다면 걱정할 것이 못된다.
『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몹시 괴롭습니다』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는 것이 걱정인 여섯 살 민지(데레사)는 오늘도 병원 내의 성당을 찾아가 기도한다.
『하느님,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동생과도 싸우지 않겠어요』민지는 골수이식을 기다리는 백혈병 환자다. 며칠전에는 같은 병실에 있던 친구 지혜가 통원치료를 왔다. 골수이식이 성공적으로 끝나 이제 유치원도 다닌다는 지혜가 민지는 자꾸만 부럽다.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중인 백혈병 환자는 150여명. 그 중 40여명이 소아환자다. 백혈병의 경우 골수이식을 할 때 완치율은 50~70%정도. 골수이식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들도 못견뎌 하는 항암치료를 매일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장기기증에 대한 홍보와 인식의 부족, 이웃사랑과 나눔에 대한 외면으로 치료 가능한 많은 이들이 지금 이시간에도 병으로 고통받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지난 99년 2월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이 제정되고 올 2월부터 시행되면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www.ko nos.go.kr)를 중심으로 전국의 지정된 장기이식등록기관과 장기이식의료기관에서 장기 기증자와 장기이식대기자의 관리, 수술이 실시되고 있다.
10월말 현재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된 장기 등 이식대기자는 모두 6574명. 최근 6개월간 시행된 장기이식건수는 총 832명, 973건에 달하나 법률 시행 이후 매일 20명이 신규등록을 하는 상황이어서 늘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현저히 많은 수치다.
이러한 가운데 다행히도 지난해 12월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 운동본부(02-727-2270)에 등록한 장기기증자가 1만명을 넘어서고 올 한해만 3천여명에 이르는 등 장기기증운동이 교회내에 확산 되고 있어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 메마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위안을 전하고 있다.
『삶의 마지막 장에서 장기기증을 하는 이들 중에는 노숙자, 미혼모 등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불쌍한 이들이 많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던 이들이 다른 이에게 생명을 남기고 떠나는 것을 보며 예수님의 삶을 새삼 느낍니다』
강남성모병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전희옥(콘스탄시아)씨의 말이다. 우리들이 저마다 기다리는 예수는 어떤 모습이며 그가 이 시대에 전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2천년전 예수가 보인 사랑의 삶을 실천하며 서로에게 예수가 되어야 할 때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