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기를 시작하는 2000년 대희년의 폐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구세주 강생 2000년을 맞은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천년을 맞아 지난 천년기의 섭리와 은총에 대한 감사를 드리면서 동시에 교회의 자녀들이 지은 죄과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
대희년 사순 제1주일인 3월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전세계를 향해 선언한 용서의 청원은 교회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각 지역 교회들의 과거사 참회가 이어졌다. 이에 한국교회에서도 주교회의 산하에 한국교회의 과거사를 성찰하기 위한 역사신학 위원회가 설치됐고 담화문 형식의 문건이 작성되고 있다. 이 문건은 11월 9일부터 열리는 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 검토된 후 대림 첫주에 맞춰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역사 성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한국교회의 역사 안에서 무엇이 성찰의 대상인지 교황청 문헌과 역사신학위원회의 활동, 각종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최초의 죄 고백·용서 청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희년의 사순 제1주일인 3월12일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용서의 날' 예식을 거행하고 가톨릭 교회의 구성원들이 2000년 역사에서 잘못한 일들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했다.
교회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처음으로 하느님과 동시대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 것은 교황 바오로 6세였다. 그 이전에 교황 아드리아노 6세가 1522년 11월25일 뉘른베르크 의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당시 로마 법정의 잘못들에 대해 인정했으나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다.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두 번째 회기 개막연설에서 동방교회에 대한 잘못된 태도에 대해 용서를 청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의 일치를 거스른 잘못들과 무신론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의 탓이 있음을 인정했으며 반유다주의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공의회는 용서를 청하지는 않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인들의 분열 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여러 기회를 통해 교회의 거룩함과는 별도로 교회 구성원들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해 인정했다.
용서 청원의 의미
교황은 지난 94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제삼천년기' 에서 "교회는 자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해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고 선언함으로써 전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회개와 화해를 통한 대희년의 은총 으로 초대했다.
98년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가 작성하고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의 인준을 받아 발표한 '기억과 화해 : 교회와 과거의 잘못들' 은 가톨릭교회가 대희년을 맞아 과거 잘못을 고백 하고 용서를 청하는 문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윤리적, 사목적 의미를 제시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이 발한 용서의 청원은 교회 안팎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불러왔으나 일부에서는 그에 대한 거북함을 보이 기도 했다. 즉 교회가 과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교회에 대해 편견에 바탕을 둔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의 비난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필연성을 가진 것일 수도 있는 행위를 오늘날의 가치와 판단으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등의 이유이다.
'기억과 화해' 는 이러한 의문, 즉 누가 누구에게 왜 과거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가,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기준은 무엇 인가, 윤리적인 시사점과 그것이 교회 생활과 사회에 미칠 영향과 결과는 무엇인가 등의 의문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교회 과거사 반성
한국교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용서 청원이 이뤄진 지난 3월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교회의 과거사 성찰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서는 교황이 '제삼천년기' 를 발표, 각 지역 교회의 대희년 준비에 대해 요청하면서 이미 과거 성찰을 위한 내적인 준비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주교회의는 올해 3월 열린 2000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새 천년기의 대희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새 출발을 위해 진지한 논의를 했으며 새로운 방향 제시를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들은 더 구체적인 연구와 심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아 연구소 등에서 이 문제를 좀더 적극적 으로연구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공론화를 거친 다음, 각 주교 위원회에서 관련 문제들을 논의" 하기로 하고 이에 따라 한국사목 연구소 안에 '역사신학위원회' 를 두었다.
이렇게 설치된 역사신학위원회는 한국교회의 반성과 새출발을 위해 과거사를 역사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연구하여 결과물을 주교회의에 상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로써 역사신학위원회는 10여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이후 8월 14일 까지 4차례 회의를 갖고 한국교회사 성찰에 관한 제반 논의를 진행한 뒤 5회부터는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관련 문서를 작성, 검토해왔으며 최근 주교회의에 작성 문건을 전달했다.
역사신학위원회는 당초 반성의 내용을 박해시대, 개항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등 모두 4개 시기로 나눠 연구하기로 했으며 반성의 주체는 현재의 우리이며 반성 문건의 수신자는 우리 민족으로 규정했다.
위원회는 성찰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는 관련 문건은 주제별로 구성하되 ▲ 민족(전통)문화적 측면 ▲ 정치사적 측면 ▲ 경제적 측면 ▲ 사회적 측면 ▲ 교회의 자기 쇄신 등 5가지 주제를 기본 골격으로 삼기로 했다.
◆ 각 지역 교회사 반성
■ 일본
일본 교회의 과거사 성찰은 이른바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교회의 전쟁 협력과 신사 참배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일본 주교협의회 회장 시라야나기 세이이치 주교가 1986년 처음으로 전쟁 책임을 고백한 후 1995년 일본 주교단은 '평화에의 결의' 라는 제목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주교단은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아시아 각국에 대한 잔혹 행위를 인정하고 사죄를 청했다. 같은 해 정의평화협의회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 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어 1998년에는 일본 가톨릭중앙협의회 복음선교연구실에서 이전의 관련 자료들을 모두 모아 엮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를 발간했으며 이는 한국어로도 번역 소개됐다.
■ 스위스
유럽 교회들의 과거사 성찰은 반유다주의와 세계대전 중 유다인 학살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 4월14일 주교단은 주교회의 정기총회의 승인을 얻어 선언문을 발표해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유다 난민과 다른 여러 난민들을 중상과 박해, 죽음에서 보호하기 위해 취해진 조처들이 거의 없다" 며 "스위스의 모든 신자들은 최근의 교회 역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 솔직한 태도를 취하라" 고 권고했다.
■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교회는 4월 14일 주교회의 의장과 사무총장 주교의 이름으로 '참회와 용서의 날' 을 선포하는 서한을 발표하고 6개항에 걸쳐 리투아니아 가톨릭교회의 과오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 서한은 신앙을 전파하고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부적절한 방법, 곧 폭력의 잘못된 사용과 불관용, 국가 차원의 분쟁에 악용된 종교심, 반유다주의에 대해 고백했다.
■ 미국
미국의 경우 각 교구별로 과거사 성찰을 다룬 담화문과 성명서들이 발표됐다.
보스턴 대교구장 버나드 로 추기경은 '우리가 일치, 희망, 정의의 표지가 되지 못했던 때' 를 제목으로 3월 11일 "대교구의 역사에서 있었던 신자들의 잘못에 대해 하느님의 용서를 청한다" 며 차별과 편견에 대해 용서를 청했다.
로스엔젤레스 대교구장 로저 마호니 추기경은 이슬람교, 유다교, 동성애자, 노동자, 이혼 및 재혼자, 여성 수도자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죄했다. 추기경은 나아가 이런 사과와 용서 청원의 정신이 추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관철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타-페 대교구장 마이클 J. 쉬한 대주교는 3월10일 거행된 화해에식 에서 과거 교회 구성원들에 저질러진 잘못들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17개의 '제 탓' 을 낭독했다.
■ 브라질
브라질 주교회의는 4월26일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1500년 4월26일 처음으로 브라질에서 미사를 봉헌한지 500년을 기념하는 미사를 거행한 자리에서 교회의 지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했다. 주교회의 의장 하이메 케멜로 주교는 "원주민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아 우리가 범한 죄를 용서해달라" 고 청했고 "흑인 형제 자매들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은 것에 용서를 청한다" 고 말했다.
◆ 주요 성찰대상
박해시대.등 4개시기 나눠 역사 委 현재까지 시점확대
역사신학위원회가 당초 성찰의 대상으로 삼은 한국교회사는 4개 시기로 나눠졌다.
박해시대에는 조상제사문제, 동양과 한국 문화에 대한 몰이해, 대박청래문제, 병인양요가 논의됐다. 동양과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과 관련된 조상제사 문제는 선교 초기에 박해의 큰 빌미를 주었으며 이는 동양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우월의식의 결과인 것으로 평가된다.
개항기에는 교안문제, 배상금 처리 문제, 안중근 사건 등이 거론 됐다. 안중근 사건은 일제 치하에서 교회가 민족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주요한 사안들은 정교분리정책과 독립운동, 신사 참배, 선교자금 활용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한국교회는 선교권을 보장받기 위해 정교분리 선교정책을 강조하고 민족 운동에 소극적으로 임했으며 이러한 자세는 결국 신자증가율 감소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정교분리정책과 관련해 당시 교계는 신자들의 저항운동을 배격 하고 단죄했다. 이런 상황은 교회의 운명에 대한 우려에서 선교의 자유와 교회의 존속을 내린 단안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신자들 중에는 많은 수가 선교정책이나 선교사들의 방침을 거부하고 무장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기간에는 분단 체제의 방관, 전쟁 억지 포기 등이 논의됐다.
한국전쟁과 교회를 주제로 올해 9월에 열린 두 번째 심포지엄에서는 교회가 한국전쟁에 대해 갖고 있던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강한 반공주의가 갖고 있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역사신학위원회는 7월24일 제3차 회의에서 반성의 시기를 개별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현재의 시점 까지로 확대했다. 이로써 독재정권 즉 권위주의 정치 체제 하에서의 교회, 경제 성장주의, 교회의 자기 쇄신 문제 등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까지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