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다. 전국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분묘만도 20만기를 넘어서고 있어 전 국토가 심각한 묘지난을 겪고 있다. 교회 묘지도 별반 차이가 없다. 교구에 따라 상황은 조금씩 다르 지만 대도시 교구의 공원 묘지들은 대부분 포화상태에 이르러 장묘문화 개선운동이 시급한 실정이다. 본지는 위령성월을 맞아 장묘문화 개선운동의 필요성과 대안을 살펴본다.
▩ 장묘문화 개선의 필요성
매년 여의도 면적의 3배인 300여만평의 국토가 묘지로 바뀌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가족제도의 변화로 2~3대만 지나면 조상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가중되는 묘지난을 해소하기 위해 2001년 부터 묘지 사용연한을 최장 60년까지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장묘법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국민들 스스로 매장 중심의 장묘에서 탈피, 화장이나 납골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하고,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교회는 지난 9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장묘문화 개선과 관련, 교회 묘지에 납골당을 설치하는 문제를 심도있게 다뤘다. 이후 시한부 묘지제에 관한 연구와 시안마련을 서울대교구에 위촉,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 교회 전문가들 중에는 새로운 장묘제도의 대안으로 유해봉안소, 가족 납골묘 등이 제안되고 있다. 특히 수원교구는 국내 최초로 유해 봉안소 건립을 추진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 교회 묘지 운영의 어려움
대부분 교구의 교회 묘지가 만장상태인 가운데 추가로 개발되고 있는 묘역이 지역 주민의 강력한 반발과 민원제기로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오래전부터 새로운 부지를 물색해오고 있지만 마땅한 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용인 묘원에 납골당을 설치 하기 위해 부지 확보와 설계까지 마쳤으나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전주.부산교구 등도 새 묘지터를 구입 하거나 확장할 때 엄청난 액수의 돈을 요구했거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 쳤다. 이는 혐오시설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라는 지역민들의 잘못된 인식과 더불어 땅값하락을 우려한 극심한 지역이기주의 때문이다.
▩ 교구 납골당·유해봉안소
이처럼 어려운 상황속에서 현재 여러 교구는 납골당과 유해봉안소란 대안을 들고 장묘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수원교구는 가중되는 묘지난 으로 이미 94년부터 납골당 건립을 준비하던 중 화장문화에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지난 98년 10월 유해봉안소 건립을 추진하기로 최종 결의했다. 이후 안성시로부터 공원묘원내 1만2700평부지에 4만2000기를 수용할 수 있는 유해봉안소를 허가받고 11월 11일 기공식 을 가졌다.
또 대구대교구는 군위묘지에 무연고 묘지를 수용하는 납골당을 마련 했으며, 광주대교구를 비롯한 인천교구 등도 교구 묘원에 납골당 건립을 추진하는 등 묘지난 해소에 노력을 쏟고 있다. 수도회의 경우 납골당을 마련해 사망한 회원들을 안치하고 있다.
▩ 현 장묘문화의 문제점
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이런 추세로 묘지가 생길 경우 10년 이내에 전국의 공원 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2050년이 되면 더 이상 묘자리로 쓸만한 땅이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장묘문화 개선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 이 아닌 '필수' 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매장중심의 전통적인 장묘문화는 오랜 역사를 통해 확립된 생활습관 으로 자리하고 있다. 묘를 잘 써야 후손이 잘된다는 이 장묘사상으로 인해 좁은 국토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이러다 후손들에게 '묘지강산' 물려주게 생겼다" 고 우려할 정도다.
유교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이어져온 장묘문화의 또 하나 문제점은 바로 무연 고자 묘지다. 현대 사회가 핵가족화 되면서 2~3대만 지나도 조상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이들 묘지의 40%이상이 토지만 잠식한 채 연고자 없이 버려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 장묘문화 개선의 출발
장묘제도의 개선은 무엇보다 변화하는 국민정서에 적절히 대응하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 장묘제도는 문화, 종교, 관습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련돼 있어 장묘관행의 변화를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적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건전한 장묘문화의 정착은 현재 상장례 관행의 근본 정신을 존중하고, 국민정서의 틀내에서 실현 가능한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화장터 및 납골시설의 현대화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화장률이 저조한 이유는 전통적 관습에 의한 국민의식 구조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지만 화장터 및 납골시설의 미비 및 노후로 이용이 불편하고 혐오시설로 인식되는데 있다. 따라서 화장터 및 납골시설을 선진국과 같이 일상생활 환경과 거리감을 주지 않게 주변환경을 개선하고 이용편의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 새로운 장묘형태
현재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장묘의 형태로는 유해봉안(육탈납골)을 들 수 있다. 매장과 화장의 중간단계인 유해봉안은 매장 후 20년이 지난 뼈만 남은 유해를 그 상태로 관에다 다시 모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봉분을 쌓는 매장과 비교할 때 같은 면적에 24배를 더 안치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유해 봉안소를 건립할 수원교구는 이곳을 찾아올 성묘객의 편의를 위해 계단 사이의 간격을 넓히고 야외제대와 합동위령탑 등 부대시설에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또 한가지 봉분묘와 납골당을 합친 한국형 가족묘가 있다. 이 묘의 외부모양은 기존의 재래식 매장형태를 유지하면서 석관 1기에 수십위의 유골을 모실 수 있어 수대에 걸쳐 가족묘로 사용할 수 있다. 가격 또한 기존 재래식 매장묘보다 저렴하다. 현재 매장할 때 공원 묘지 1기(3평기준) 매입가가 500만원 가량 소요되나 가족묘의 경우 300만원 정도다. 한국형 납골묘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뿌리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 전통 사상에 적합하면서도 국토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김득수 회장은 "이러한 형태의 가족묘는 현재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묘지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고 지적했다.
▩ 바람직한 개선 방향
가톨릭의 경우 교회법으로 매장하는 것을 권장해왔지만 화장을 금하지는 않고 신자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가톨릭 내에서도 아직은 신자들의 매장 선호가 뚜렷하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장묘문화로의 변화는 대세인만큼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할 당사자들이 계속 거부감을 갖게 된다면 그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장묘제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뒷받침된다면 장묘제도의 개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신자들 안에 의식개혁이 먼저 요구된다.
최근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화장을 금하지 않는다는 교회법을 알고 있었느냐' 란 질문에 '몰랐다' 란 대답이 46.7%에 달했다. 또 '매장과 화장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란 질문에는 아직도 80.5%가 매장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상을 납골묘(당)에 모실 의향이 있느냐' 는 질문에는 81.9%가 '그렇다' 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앞으로 납골형태의 장묘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는 사회가 발전하고 가족제도가 분화됨에 따라 과거의 인습에 얽매인 장묘제도의 불합리성을 종교 윤리적인 차원에서 명백히 해명 하고, 건전한 장묘문화 정착을 위해 이웃 종교간의 협력을 통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같은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장묘제도 개선을 통한 종교문화의 정착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 2000년, 장묘법 개정안 어떻게 바뀌었나
■ 외국의 장묘제도
일본은 종교, 문화 및 거주양식 등의 면에서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으므로 장묘관행이 흡사하리란 예측을 낳으나, 철저한 법적 규제와 행정지도로 화장위주(97%)의 관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은 인구에 비해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화장보다는 주로 매장(88%)을 하는 관습이 있다. 묘지는 주로 교회와 연계시켜 입지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잔디와 울창한 수목 등 자연경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와는 달리 매장할 때 관의 크기만큼 땅을 파서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주변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1기당 묘지 면적도 작게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국민의 100%가 화장을 하고 있다. 13억이 사는 중국은 어디를 가든 개인묘는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은 납골묘, 납골당에 이어 최근에 유골 가루를 바다나 나무 밑에 뿌리는 유골림을 조성하는 등 아예 유골을 남기지 않는 장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는 매장되더라도 대부분이 가족묘 형태로 합장되는데다 1기당 분묘 면적도 반평이하로 넓지 않다. 또한 예술의 나라답게 정원식 묘지를 갖추고 있다. 특히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는 공원식 묘지답게 박물관으로 지정돼 문화재 대접을 받고 있다. 또 인근 주민들에게 항상 무료로 개방돼 묘지 곳곳에 심어진 수목아래서 책을 읽거나 산책나온 사람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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