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가 이끈 신앙의 진리
사도시대 직후 교회를 이교도들에게 전파한 것은 평신도들이었다. 이들이 일반 민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교하지 않았다면 복음 선포가 그처럼 눈부시게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또 초대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들은 성직자가 아니라 일반 신자들이 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학파나 다른 신학파들이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됐다는 것은 매우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사도시대 후 교부시대의 교부들과 신학자, 사상가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평신도 로서, 박해를 견디면서 끊임없이 이단사상과 대항해 싸우기 위해 교리 지식을 연마해야 했다. 평신도의 자발적인 신앙 수용으로 세워진 한국교회 역시 초대교회 당시 평신도들은 스스로 교회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이를 삶으로 구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들은 다른 천주교 신앙을 연구하고 그 안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해 신앙으로 수용했다.
평신도 신학이란
평신도 신학의 정립과 평신도 신학자의 양성에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평신도 신학 연구」라 할 때 이는 평신도로서 신학을 연구한다는 뜻과 평신도에 관한 신학을 연구 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한다』고 천명했다. 더욱이 현대 사회에서 평신도가 지닌 전문성과 세속성을 바탕으로, 세상의 복음화는 평신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게 됨으로써 평신도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평신도의 신분을 정립하고 그 직무와 역할을 구명하는 '평신도 신학' 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다. 공의회는 교회의 본질을 하느님 백성으로 정의함으로써 교회론 안에서 평신도는 신학으로 자리잡게 됐다. 「평신도들의 신학 연구」역시 오늘날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평신도들은... 각자의 고유한 능력과 조건에 맞는 교리 지식을 습득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들은 교회 대학교들이나 대학들 또는 종교학문의 연구소들에서 전수하는 거룩한 학문의 지식을... 더욱 풍부하게 습득할 권리도 있다. 또한 그들은 ... 합법적 교회 권위로부터 거룩한 학문을 가르칠 위임을 받을 자격도 있다』(교회법 제229조)
오늘날 평신도들의 성직자 의존적 사고나 행동 양식, 수동적인 교회 참여의 이면에는 단순한 교리 지식의 부족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신학에 대한 무지와 사도직에 대한 이해 및 훈련의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 속에 사는 평신도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 이기 위해서 평신도 신학자들의 육성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신도 신학의 발전을 위해
한국교회 안에서 평신도 신학자들의 성장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성서신학에서는 각종 성서 모임을 통해 육성된 성서 모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저변이 확대됐고 역사신학 분야에서는 중견 연구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교의신학 분야에서도 박사급 연구자들이 각종 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며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석박사 학위에 들어가 있는 평신도들이 늘어 났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공을 별도로 갖고 있으면서 교회 유관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급 연구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한결같은 고충은 교회 안에서 교회 유관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매우 외롭고 힘들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구자들이 교회 학문에 몰두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은 물론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지원 방안이 수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이들 학자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연구 결과를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평신도 신학과 교회 학문 연구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은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일부 연구소 와 대학, 출판사 등을 제외하고는 이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은 매우 미흡하다. 뿐만 아니라 신학의 연구에 뜻을 둔 초심자들이 입문할 수 있는 교육기관도 일부 신학교와 대학을 제외하고는 단기간의 연구나 강좌에 지나지 않아 절대량이 부족하다.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교육 기관인 가톨릭대 신학부 역시 입학 정원이 소수에 그치며 이들은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 을 갖고 있다. 사제직을 위해 공부하다가 성소를 포기한 이들 역시 이후 교회 내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는 이는 드물고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도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양성 및 활용 방안
평신도 신학의 정립과 평신도 신학자의 양성은 한국교회가 새 천년기를 맞아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육성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우선 평신도 신학의 발전을 위해 유관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 상설기구로 연구소를 설치해 유능한 연구자들을 수용하고 재정적인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회를 설치하거나 뜻이 있는 후원자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가톨릭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평신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일반 학생이든 사제직을 지망 하다가 성소를 바꾼 평신도든 철학과 신학에 대한 기본 교육을 거친 이들 졸업생들은 평신도 신학자로 육성하기에 적합한 소양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실시되는 각종 강좌나 연수 등을 연구 발전시켜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전문 교육 기관을 개설하고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평신도 신학자 육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와 함께 육성되는 평신도 신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마련 해야 한다. 각종 서적 출판이나 통신 교육 프로그램,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인쇄물의 발간, 본당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 마련 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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