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같은 손에 과자 상자를 들고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들어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였다. 재잘거리다가도 인솔 교사로부터 이 곳에 사는 장애인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땐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진지해지는 아이들의 순박한 모습에서 성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12월 3일 오전. 충남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성모의 마을」에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을 닮은 순백의 영혼들을 찾아왔다. 손에 손에 과자 상자를 들고 이 곳을 들어선 이들은 자신들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보곤 금세 진지해졌다. 긴장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어떤 아이는 놀라는 눈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장애인들과 친구가 되고, 동생이 돼 있었다.
원생들도 모처럼 자신들의 또래가 찾아온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비록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친구가 온 것을 온몸으로 환영하는 눈치다. 그리고 곧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환한 웃음을 짓고, 떠듬떠듬 친구들이 온 것을 환영하느라 여기저기서 야단이다. 선생님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원생들과 대림절을 맞아 가난한 이웃을 찾아온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이내 성모의 마을은 고요해진다. 한 나절을 원생들과 신나게 놀던 호기심 어린 학생들이 떠나고 난 뒤라 적막함이 더하다. 원생들과 교사들은 금세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왠지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원생은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매일 친구들이 놀러왔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하며 쑥스러운지 금방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성모마을 부원장 김지곤씨는 『연중 행사처럼 성탄이 다가오거나, 장애인 주일에 우리를 찾아오는 이들이 고맙기는 하지만 평상시에도 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원생들에게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을 인격체로 대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때 가능할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한참 시끌벅적 했던 성모마을은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조용한 가운데 재활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장애인들과 이를 도와 손과 발이 되고 있는 직원들 사이에 또 다시 차가운 현실이 찾아온 것이다.
성모의 마을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박선미씨는 『간호사로서 내 능력이 부족할 때 가장 서글프다』며 『장애진행을 막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금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다.
현재 성모의 마을에는 10세부터 40세까지 중증 장애인 77명이 거주하고 있다. 지체 1급에 해당하는 이들 모두는 사실상 혼자서는 아무런 생활도 할 수 없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배정된 직원들은 간호사, 물리치료사 각 1명과 보육사, 보조 등 총 40명이다. 다른 시설에 비하면 월등히 직원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타 시설이 원생 100명에 20명 수준인 것에 비하면 그 배가 훨씬 넘는 수준이다.
현재 성모의 마을의 법정 직원은 25명. 나머지 15명은 대전교구 법인이 그들을 채용,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는 상태다. 대부분의 시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비를 들여가며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원장 황용연 신부는 『성모의 마을은 원래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창립 목적』이라고 설명하면서 『장애인 1명당 직원 1명이 보통인 선진국형 시설을 지향하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직원수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원장 김지곤씨도 『일반인들은 장애인들을 돌봐줄 의무가 있고, 장애인들은 일반인들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역설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삶의 질을 높여주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정말 눈물나는 전쟁과도 같다』고 말한다.
성모의 마을의 한 해 운영비는 9억여 원. 이중 4억여 원이 국가 보조고 나머지는 후원금이나 대전교구 법인에 의해 충당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IMF 이후 후원금이 30~40%가 줄었고, 이맘때면 방문하던 이들도 현격히 줄어든 상태여서 벌써부터 내년 살림살이 걱정이 태산이다.
황용연 신부는 『현재 정부 보조는 모두 직원들 인건비에 들어가고 있다』고 밝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성모의 마을을 건립한 성모의 기사 수녀회에 한국 성소자가 늘어 이들을 직원으로 쓰는 방안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 했다.
성모의 기사 수녀회는 내년 3월에 성모의 마을에 수련원을 겸한 수녀원을 건립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성소자 교육을 해온 것을 탈피, 내년부터는 한국에서 성소자 개발과 수련을 하겠다는 의지다.
황신부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의 영성을 따라 살려는 수도회의 정신에 동참하려는 많은 성소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이는 성모의 마을이 선진국형 시설로 거듭 태어나느냐, 그렇지 못하고 후진국형 복지시설로 전락하느냐를 가늠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척박한 상황에서도 1대1 서비스를 지향하며 출범한 성모의 마을. 한국사회복지 시설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성모의 마을의 성공 여부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에 달려 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우리에게 온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아들이 왜 베들레헴이라는 시골, 그것도 마굿간에서 태어났는지 진실하게 묵상해 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모의 마을 원생들에게 건강한 웃음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아기 예수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도움 주실분=국민은행 457-25-0005-696, 농협 461058-51-011210, 예금주: 성모의 마을
◆자원봉사자 예비부부 김정우ㆍ박선미씨”
“장애아동들 보며 아기 예수님 생각해요”
“성탄 의미도 더불어 사는 삶”
27일 결혼…신혼살림도 성모의 마을에 꾸려
『아기 예수님은 분명 이 곳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세상에 오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들이 인격체로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분은 베들레헴의 누추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중증 장애인의 보금자리인 충남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 자리한 성모마을에서 일하고 있는 박선미(데레사ㆍ32), 김정우(바오로ㆍ29)씨가 다가오는 성탄을 생각하면서 들려주는 말이다.
예비 부부이기도 한 이들은 오는 27일 이 곳 성모의 마을에서 원생들과 직원들의 따스한 축복을 받으며 혼인성사를 받게 된다.
지난 95년 6월 성모의 마을이 문을 열때부터 간호사로 일해온 박선미씨와 1년간 자원봉사자로 일하다 아예 이곳에 눌러 살게된 김정우씨에게는 자신들의 결혼준비보다 이곳 원생들의 성탄맞이에 더욱더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박선미씨는 『처음에는 두렵기까지 했다』고 이 곳에서 일하기 직전의 심정을 털어놓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장애인들을 동정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인격체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잔잔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해맑은 그들의 웃음, 단순하지만 진실이 배어 있는 그들과의 대화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이들 예비 부부는 결혼 후 성모마을 한 켠의 사택에서 신혼살림을 꾸린다.
그들과 같은 삶의 울타리 안에서 늘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싶은 이들이기에 온갖 힘든 역경을 견뎌 나갈 각오를 다지고 있다.
장애인들과 더불어 살면서 가장 힘든때가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함을 느낄때라고 말하는 이들 부부는 『장애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선 우선 복지법부터 바뀌어야한다』고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장애인 1명에 간호사 1명인 선진국에 비해 150명에 1명인 우리나라의 복지법이 바뀌지 않는 한 양질의 복지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정우씨도 『33년을 방안에서 갇혀 사는게 사람이냐』고 반문하면서 『장애인들이 밝은 곳에서, 일반인들이 있는 사회에서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것이 바로 성탄의 의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삶을 모두 투신해, 장애인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나선 박선미씨와 김정우씨. 이들이 결혼하는 27일은 성모마을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성탄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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