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버려졌을까? 낳아준 부모가 날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 가난해서였을까? 도덕적으로 날 떳떳이 키울 수 없어서였을까? 알 수 없는, 버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서였을까?
어쨌거나 현모(요셉, 4)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받고 힘겨운 생존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버려진 아기들을 거두어 새 부모가 나타날 때까지 보살펴 주는 성가정 입양원에 핏덩이가 맡겨졌다는 것.
배고파 울면 따뜻한 우유를 먹여줬고, 똥오줌을 싸도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씻어줬다. 심심할 때면 장난감을 쥐어줬고, 옷이 더러우면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 입혀줬다. 언제나 웃으시는 수녀 엄마와 자상한 봉사자 엄마들이 놀아 주는 입양원은 버림받은 서러움보다는 행복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없이 안기고 싶고, 끝도 없이 재롱을 떨고 싶은데 왜 모두들 잠시 잠시 놀다 가는 걸까. 왜 이렇게 허전함을 남기는 걸까. 언제부턴가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도 현모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현모는 비뇨기계통에 이상이 생겨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자연히 입양도 늦어지면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새 가정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섭섭함을 달래야 했고, 새로 들어오는 동생들도 낯이 익으려고 하면 사라지곤 했다.
22개월. 두 살을 꽉 채워 가는 어느 날 현모는 수녀 엄마 품에서 어떤 낯선 아주머니의 품으로 넘겨졌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발버둥을 쳤지만 엄마라면서 놔주지를 않았다. 그 길로 차에 실려 집이라는 곳으로 갔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많은 친구들과 많은 엄마들로 분주했던 입양원과는 달리 엄마 아빠 형 세 식구뿐이었다. 이틀동안은 엄마 아빠와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현준 (안드레아, 10)이라는, 현모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형이 있었지만 서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현모는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허전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던 입양원과 달리 항상 엄마가 옆에 있으면서 보살펴 주었다.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캄캄한 밤을 지나 아침에 눈떠보면 항상 엄마 아빠가 웃으며 맞아주었고 형이 말을 걸어왔다. 차츰 부족함이 없어지며 현모의 얼굴에는 개구쟁이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집안 일에 열중일 때는 형이 갖고 놀던 장난감이 현모의 차지였고 엄마가 외출할 때면 언제나 함께였다. 세상구경도 즐거웠지만 엄마와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형과 누나들을 만나는 일이 여간 즐겁지 않았다. 무뚝뚝한 아빠이지만 가끔 장난을 걸어오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모습에서 정이 넘쳐나고 있다. 형도 이제는 현모가 없으면 심심해서 못살 것 같다고 말한다.
1년6개월. 현모가 엄마와 아빠, 형을 만나 살아온 날이다. 새로운 삶, 비록 한 때 버림받은 인생이 어른의 눈에 불쌍하게 보였지만 이제 현모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들이다. 현모에게는 그늘이 없다. 언제나 밝고 장난기가 흐른다. 혹 섭섭한 일이 있을라치면 엄마나 아빠에게 안겨 감정을 극복한다. 언제나 현모에게는 새로움과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현모를 맞이한 송문태(시메온) 이유순(안젤라)씨 부부도 이렇게 현모가 잘 적응할 줄 몰랐다. 입양원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키워져서인지 나이(40개월)보다 성숙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혼자서 일을 잘 처리한다. 고집은 부리지 않지만 하고자 하는 일에 강단이 보인다. 배려심이 많고 때로는 장난이 심하지만 풀죽어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모두들 좋아한다. 이유순씨는 좬내 뱃속으로 낳아도 현모 같은 아기를 못 낳을 것좭이라며 대견해 한다.
송문태 이유순씨 부부는 90년대 초 약 4년간 미국생활을 경험하면서 입양문화를 체험했다.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던 송씨는 미시간주 한인 입양아 모임과 접촉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가까웠던 미국인 학생부부가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집 두 채를 빌려 4~5명의 입양아를 키우고 있음을 알고 내심 감탄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입양아가 오는 날은 집안이 잔치 분위기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누가 알까 몰래 쉬쉬하며 키우거나, 아예 입양과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버리는 실정이 아니던가. 이렇게 떳떳이 입양아를 받아들이는 미국의 문화가 새삼스러웠다.
그렇다고 송씨 부부가 미국생활을 마치고 입국하자 바로 입양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유순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몸담게 됐다. 이씨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가정 방문을 하면서 많은 가정이 불화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고 그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자연히 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게 되고, 그 관심만큼 아이들이 밝아지고 성적이 올라감을 알게됐다. 그러면서 심하게 자책으로 와 닿는 것이 외아들 현준에게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결혼 초기 부부간에 성격 차이로 어려움이 많았고, 심한 입덧으로 태교다운 태교를 못했다. 어쩌면 외로웠을 현준이에게 동생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모가 한 식구가 되면서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입양원의 공동생활을 통해 얻은 나눔이나 배려하는 모습들이, 혼자 자라면서 의존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던 현준이에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성격차이, 가치관의 차이를 완전히 극복 못한 송씨부부에게도 현모라는 공통분모는 적지 않은 장애들을 치유해 나가는 요소가 되고 있다.
입양 사실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 송씨부부는 최선을 다해 키우면 나머지는 하느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현모가 커서 이해할 수 있을 때 낳아준 엄마 아빠가 아님을 밝히고 당당히 자기 인생을 개척하도록 뒷바라지 하겠다고 말한다.
입양이 가져다 준 가정의 변화, 현준의 새로운 삶, 현모의 새로운 인생에 감사할 뿐이라는 송씨부부는 현모와 현준이의 터울(6살)이 길어 기회가 되면 한 명 더 입양하고 싶단다. 그러면서 입양을 주저하는 부부들에게 좋지 못한 선입견을 버리고 좥생명을 나누는 삶좦에 용기 있게 나서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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