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이면서도 끊임없는 피의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의 어느 한 순간이라도 피흘림의 싸움이 없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촌의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참된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에 의지하면서 이 기도를 멈출 수 없다.
평화에 대한 염원, 그러나…
6백만에 가까운 유대인 학살을 포함해 4천만에서 6천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는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가슴에 품게 됐다. 하지만 곧 다시 인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양대 진영으로 나누어져 대립하게 됐고 각국 공산주의 혁명의 와중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희생됐다.
그 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막을 내렸고 세계는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냉전 종결과 공산권 붕괴의 부산물로 생겨난 민족주의는 인종, 종교와 한데 얽히면서 인간의 상상력과 관용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을 양산해내고 있다. 대전(大戰)의 위협은 줄었지만 크고 작은 엄청난 국지적 분쟁이 지구촌 전체에서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일촉즉발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안고 있는 형편이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2월14일 평화 노력이 배가되지 않는 한 99년의 세계는 이라크, 아프리카, 발칸반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최악의 사태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종, 종족, 종교영토… 분쟁의 원인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는 1800년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들 맘대로 그어놓은 국경선에 종족간 분쟁이 뒤얽히면서 대륙의 거의 전역에서 분쟁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여기에 반정부조직의 정부군과의 싸움이 더해지고 수없는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불안정한 정전이 대표적인 양상이다.
앙골라 내전에서 19년간 50만명이 숨졌고 수단에서는 15년간 그 3배인 1백50만명이 희생됐다. 우간다, 차드, 라이베리아, 모잠비크, 소말리아 내전, 93년 독립을 쟁취한 에리트리아의 에티오피아로부터의 분리독립운동, 비아프라, 에티오피아, 수단의 기근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은 말로 할 수 없다.
아프리카의 좥킬링필드좦 르완다에서는 불과 3개월만에 7백50만 인구 중 50만명이 희생되고 2백여만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그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지난 92년 한해에 35만명이 내전과 가뭄으로 사망했고 반정부조직의 무장투쟁이 두드러졌던 모잠비크는 반군들이 어린이들을 납치, 군사 훈련을 시켜 가족을 살상케 함으로써 2백만명의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파탄상태로 알려져있다.
◈아시아
아시아 지역의 분쟁은 대부분 종족간 불화에 종교문제가 겹쳐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89년 소련군이 완전 철수하고 92년 9개 무자헤딘 세력이 14년간에 걸친 내전 끝에 친소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연립정부를 세웠으나 또다시 세력 다툼을 벌이는 통에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다. 90년 통일한 예멘도 여러 차례의 내전을 거쳐 94년 북예멘이 무력으로 전역을 제압했으나 여전히 유혈 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
8억이 넘는 인구가 힌두교와 회교도로 극명하게 양분돼 있는 인도는 여기에 카스트제도로 인한 사회갈등과 빈부격차가 분쟁을 격화시키고 있다. 인도는 이웃 파키스탄과도 분쟁상태로 올해에는 경쟁적인 핵개발로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성이 우려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도 서로 포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수백명이 죽거나 부상하고 10여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캄보디아는 20년을 넘게 끈 내전에 35만여명이 난민이 됐고 93년 이래 크메르루주의 베트남계 인종 학살로 인해 50여만의 캄보디아내 베트남인들이 보트피플로 바다를 떠다닌 바 있다. 티베트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면서 10만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동티모르를 탄압해 15만여명을 살해하고 온갖 인권 침해를 자행해왔다.
◈북아일랜드
수백년간의 민족, 종교적 갈등 속에 지난 30년간 3천4백여명이 희생된 북아일랜드 신구교간 평화협정이 지난 4월 타결된 것은 이 지역의 평화 정착에 큰 전기가 됐으나 양측의 극단 세력들은 강력한 거부의견을 표시하면서 여전히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중동지역
세계의 관심이 됐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 협정 역시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나 중동의 완전한 평화 정착까지는 길이 멀다. 이라크는 현재 가장 전면전의 위험을 크게 안고 있는 요주의 지역이다. 미국은 유엔 무기사찰단에 협력하지 않고 있음을 이유로 최근 수차례의 공습과 포격을 가함으로써 사태의 추이에 따라 전투의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유럽
올들어 1,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코소보 사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엄청난 비극의 연장선에 있다. 유고연방내 세르비아 공화국에 있는 코소보 자치주의 분리독립 추진은 세르비아 당국의 유혈 탄압을 불러왔고 30만명 가까운 알바니아 난민들이 산악으로 숨어들었다.
보스니아가 구유고연방에서 독립한 것은 90년. 세르비아가 92년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분쟁은 좥민족 청소좦라고 불릴 정도로 대규모 인종학살극을 벌여 20만명에 달하는 사상자와 전체 인구 4백20만의 절반이 넘는 2백30만명의 난민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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