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40년간 선교사로 활동하다 지난 3월26일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 본원에서 골수암으로 선종한 최분도신부(Fr. Benetict A·Zweber M·M)는 인천지역 혼혈아 장애아 고아들의 대부, 근대사와 함께한 「살아있는 성자」, 섬 주민들의 슈바이처 였다.
선종 소식후 평소 최신부를 곁에서 지켜보던 이들에 의해 속속 알려지고 있는 최신부의 모습은 인천교구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한 선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전후 60-80년대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천여명 고아들에게 부모와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도서지방 주민들을 위해서는 병원선을 띄워 의료혜택을 베푸는 한편 육지로부터 전기와 수도시설을 끌어와 근대화를 앞당기게 한 개척자의 상이다.
59년 2월 부산을 통해 입국한 최신부는 특별히 60년 연평본당 임시 본당신부를 시작으로 76년경까지 서해 백령도 덕적도 영종도등 도서 지역에서 사목 활동을 벌이며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덕적도에서는 새마을운동이 일기도 전에 가장 먼저 새마을 사업을 전개, 간척사업을 통한 양식장 건설등으로 주민들의 생업을 돕고 전기 상수도시설 사업으로 섬 주민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병원건립과 함께 병원선도 운영, 덕적도뿐만 아니라 인근 낙도 주민들의 의료복지를 도맡기도 했다.
이같은 공로로 최신부는 70년경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덕적도 주민들은 공적비를 세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덕적도 이후 인천 송현동 산곡3동 부평3동등 다수의 본당 신설을 맡아 선교활동을 펼치면서도 최신부는 지역내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
혼혈아, 장애아, 고아등 갈곳없는 역내 불우 아동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공부를 가르치는 한편 미국 등지로 해외 입양을 주선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한 최신부의 노력으로 부모와 가정을 갖게된 고아들이 1000여명에 이른다고 지인(知人)들은 설명하고 있다.
그의 한국사랑은 고등학교 시절, 맏형이 주한미군으로 활동중 한강에서 인명구조에 나서다 목숨을 잃었던 사건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형의 죽음이후 선교사로서 한국에서 살 것을 결심했고 그러한 한국과의 인연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유신헌법 제정 반대에 앞장, 본국 귀환령을 받을 만큼 한국인편에 서는 애정으로 키워졌다.
신학생시절 본당 주임신부로 최신부를 가까이 했던 최병학신부(소사본당 주임)는 『「나는 달릴 길을 달리고 할바를 다했다」고 말씀하신 사도바오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하느님 사업 위해 할 일을 다한 분』이었다며 『자신은 검소하면서도 남에게는 후하고 주변의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는 참 선교사요 사제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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