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대축일이 다가오는 봄기운이 완연한 주일.
일상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들이라면 어떤 열기에 사로잡히길 은근히 갈구하게 되는 시기. 이 열기가 기도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기도가 생활이 될 수 있는 은총을 맞이하게 된다면 한해에 한번쯤 이런 열기에 들떠도 어떠리.
자신의 죽음을 안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길은 「새로운 예루살렘」인 교회로 오시는 길임에 다름 아니다. 예수의 기쁨과 슬픔, 영광과 모욕이 엇갈리는 이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인의 본향을 확인시켜 주는 길이기도 하다.
경기도 화성의 해안이 가까운 남양성모성지, 1866년 병인 대박해로 죽어간 이름없는 순교자들의 믿음이 서린 이곳의 존재는 오늘의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우리의 믿음에 채찍을 가하는 듯하다.
그러나 순교의 공은 커서 순교자들의 기도가 곳곳에 꽃송이로 피어나 아름다운 곳이다. 믿음을 지닌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늘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힘으로 깨어나게 하는 기도의 은총과 만나게 하는 기도의 장이 된 곳이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이 곳에서 2000년 전 몰려든 군중들의 환호 속에 들뜬 열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고맙고 고마우신 예수님의 고통에 찬 입성, 그 입성의 길이 어느 곳에서보다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을 맞는 군중들 속에서 함께 흔들었을 「성지」를 기도로 간직하고 돌아가는 길은 구세주로 오신 왕을 환영했던 가슴 뿌듯한 추억이 된다.
십자가의 운명을 닮고, 주의 부활과 그 생명의 길에도 한몫하길 다짐하는 시기. 가장 인간적인 예수,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고뇌에 빠진 슬픔의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신 예수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오늘. 그분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우리는 남양성지에서 만나는 독특한 기도의 되새김으로 새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성지를 돌며 어른 팔 한아름으로도 안을 수 없는 돌로 된 5단의 로사리오 기도의 길, 이 기도의 길을 감싸며 산허리에서 성지를 내려다보는 수천 걸음의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수난의 행적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한다.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게 하는 남양성지는 애써 그 길을 걷는 이들의 새로운 다짐이 엿보여 지켜보는 이들도 기쁨에 차게 만든다.
깜깜한 밤 초를 밝혀 들고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례객들, 거친 숨을 내쉬며 한 발 한 발 힘겹게 로사리오의 길을 걷는 할머니, 엄마 아빠의 경건함에 함께 젖어 예수상을 엄숙한 표정으로 만지는 아이들…. 그들이 떠올렸을 이름 모를 이들의 죽음, 그리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울컥 쏟아질 듯한 십자가 앞에서 그들은 오늘도 기도의 은총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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