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첫째주 화요일 오후 1시. 서울 미아 9동에 위치한 성 바오로딸 수도회 안의 강당에서는 싱그러운 봄의 향기가 퍼져 나온다.
그 산뜻하고도 깊은 향기는 바로 책 속의 진리와,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 책 안에 담긴 영원한 진리를 배우고 사랑을 나누는 이들은 바로 「경기여고 44회 가톨릭 독서회(회장=김을영·64·젬마)」회원들이다. 90년 5월 1일 첫모임을 시작한 이래로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벌써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경기여고 동창생」이라는 인연으로 우정과 신앙을 쌓아가는 스무 명의 회원들은 매달 한 권 또는 두 권씩 읽은 책에 대한 내용으로 모임을 이끌어간다.
주로 교회 신간들을 읽는 이들은 책의 내용과 메시지 등을 발표하기도 하고 때론 저자의 사상과 교육, 영성적인 내용들을 나누기도 한다. 열심히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열성적인 여고시절 학생으로 돌아간다.
저마다 빛나는 눈빛으로 서로의 의견에 귀기울이며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놓칠세라 노트에 적어보기도 한다.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이 삶의 깊이를 보여주건만 이 시간 만큼은 학창시절 다들 열심한 경기여고생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 만큼 이들은 젊은 시절 교수, 교사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덕분에 참석하는 모임이 한 두개가 아니지만 이 포럼 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학창시절의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있고, 신앙생활에 있어 무엇보다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여고생 버금가는 열의를 지닌 할머니들이 이 독서모임을 통해 읽어온 책만 해도 200여권이 훨씬 넘을 정도. 또 책이 좋아 함께 시작한 가톨릭신자들의 모임이지만 개신교, 불교 신자들도 함께 자리해 종교를 초월한 우정을 나눠왔다.
오늘까지 포럼을 이어오는 데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들을 동반해준 김마리아 수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원들은 모두 입을 모은다. 좋은 책 선정은 물론이며 회원들의 신앙성장에 큰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늘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며 가족적인 분위기로 모임을 이끌어오는 데는 회원들의 오랜 우정과 함께 김수녀의 정성과 노력이 숨어있었다.
김을영 회장은 『학교 때 얼굴만 알았던 친구들과 여기 와서 십년지기가 됐다』면서 『하느님 가르침대로 오랜 친구들과 사랑을 나누며 꾸준하게 모임을 이어가고 싶다』고 한다.
모임이 끝나면 여고생들처럼 우르르 몰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책 읽는 할머니들」.
세상 마지막날까지 모임을 이어가고 싶다는 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사색을 즐기는 소녀의 감성이 넘쳐흐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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