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역자가 된 것은 사랑, 일치, 봉사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신비로써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증인이자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현대 사회에도 그리스도를 향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이 목마름은 공허한 말로는 달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성사적 화해라는 주제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고해성사는 여러 이유로 위기를 겪어 왔습니다. 대희년 동안 용서의 성사를 열심히 실천한 것은 고무적인 징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으로 응답받는 인간 영혼의 깊은 요구가 일시적인 위기로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성목요일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특히 성덕으로 향하는 여정에 대하여 우선 생각해 보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제직의 은총을 과분한 자비로 여겨야 합니다.
자비는 분명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자유로운 행위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한 순간 주님의 자비로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위대한 신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 가운데서 당신의 교역자를 뽑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오로의 성소도 이 자비의 경험 안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까? 교회의 포악한 박해자였던 그의 과거는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면 입을수록, 이 자비를 증언하고 그 자비로 자신의 인생을 밝혀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간절히 느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증언은 귀중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현명한 사목 계획의 첫째가는 요소는 성덕에 대한 노력입니다. 화해의 성사를 성화의 근본 수단으로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입니다.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고해성사를 정기적으로 받도록 합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수적인 화해의 성사는 특히 사제 생활에서 지지와 지도, 치유의 원천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화해성사가 위기를 맞기까지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이 성사를 거스르는 또 다른 요인은 우리 자신의 열정과 준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하느님 백성이 고해성사를 재발견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굳은 확신을 갖고 고해 성사가 세례를 받은 후 지은 중죄에 대한 용서와 사면을 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선언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전례법에 규정된 양식에 따라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 성사를 거행하여야 합니다.
고해성사가 올바르게 거행되면 교화의 효과도 가져온다는 사실을 과소 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여기서도 화해의 교역자가 그 소임을 올바르게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해의 교역이 그 가치를 완전히 드러내려면 우선 사람들이 교역자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야 하며, 교역자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성사의 전례 양식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성사는 교회의 특징인 성찬식 구조의 일부분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죄를 보게 되면, 결국에는 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공동체의 성덕을 흐린다는 사실을 잊게 되어 죄 자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용서를 베푸는 것은 초자연적인 결속력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성사적 의미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구성원들 사이의 심오한 결합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별 고백과 사면으로 마무리되는 공동체 참회 예절을 통하여 사람들이 이 성사의 공동체적 측면을 재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성사 거행 방식으로 신자들은 화해의 두 가지 차원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온전히 거듭나게 하는 참회의 길을 따르는데 열심히 전념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복음에 나와있는 근본적인 내용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도덕 의식과 죄에 대한 교리의 가르침이라는 중요한 문제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교리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리가 이 성사에서 바라는 모든 혜택을 얻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사회가 규정하는 대로 착하게 살려는 평범한 노력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되며, 성덕에 대한 진정한 추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하느님 백성이 고해성사를 재발견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굳은 확신을 갖고 고해 성사가 세례를 받은 후 지은 중죄에 대한 용서와 사면을 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선언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전례법에 규정된 양식에 따라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 성사를 거행하여야 합니다.
고해성사가 올바르게 거행되면 교화의 효과도 가져온다는 사실을 과소 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여기서도 화해의 교역자가 그 소임을 올바르게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해의 교역이 그 가치를 완전히 드러내려면 우선 사람들이 교역자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야 하며, 교역자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성사의 전례 양식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성사는 교회의 특징인 성찬식 구조의 일부분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죄를 보게 되면, 결국에는 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공동체의 성덕을 흐린다는 사실을 잊게 되어 죄 자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용서를 베푸는 것은 초자연적인 결속력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성사적 의미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구성원들 사이의 심오한 결합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별 고백과 사면으로 마무리되는 공동체 참회 예절을 통하여 사람들이 이 성사의 공동체적 측면을 재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성사 거행 방식으로 신자들은 화해의 두 가지 차원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온전히 거듭나게 하는 참회의 길을 따르는데 열심히 전념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복음에 나와있는 근본적인 내용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도덕 의식과 죄에 대한 교리의 가르침이라는 중요한 문제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교리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리가 이 성사에서 바라는 모든 혜택을 얻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사회가 규정하는 대로 착하게 살려는 평범한 노력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되며, 성덕에 대한 진정한 추구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교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