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때에는 기타치면서 노래하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버님이 계실 때는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버님께서 우리가 공무원이 되기를 무척이나 바라셨기 때문이다. 우리 자식들의 앞날에 그것이 가장 안정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1970년 가을 쯤 아버님께서 혈압으로 쓰러지셨다. 어머님께서 받으신 충격은 매우 크셨고 아버님은 바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때 집과 땅들,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여 아버님 병원비로 쓰게 되었는데 어머님께서는 그 병원 근처에 숙박을 하시면서 지극 정성으로 아버님을 간호하셨다. 그러나 어머님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병환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때 어머님께서는 처음으로 치료비를 충당키위해 밤무대에 아버님 모르게 나가셨다.
그동안은 극장 무대에만 출연하셨던 것이다. 어머님은 가장 유명한 무대에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고 나가셨으나 아버님께 올 때는 화장을 깨끗히 지우고 오시곤 하셨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항상 곁에 있어 주길 바라셨는데 어느날 어머님이 부산으로 공연을 가시고 나서 병원 담당의께서는 아버님이 그 날을 넘기기 힘들다고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핸드폰도 없던 그 때엔 어머님께 소식을 알려드릴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 둘째 누님이 아버님 곁에서 간호를 했는데 어머님 후배 가수가 신부님 수녀님을 모시고 왔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기에 누님은 검은 옷 입고 오는 것이 못마땅하여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님이 그 날 하루를 넘기지 못하신다고 했을 때 둘째 누님이 혼자 아버님 곁에 있었는데 누님은 다급한 나머지 아버님 곁에서 울며 『하느님, 당신이 살아 계시다면 우리 어머님 돌아오실 때까지만이라도 아버님을 살려주세요. 그러면 내 삶을 온전히 바치겠습니다』하고 몇시간을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때 아버님께서 다시 움직이시기 시작하여 의사에게 연락하였는데 의사는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
그 후로 아버님께서는 어머님도 보시고 또 건강하게 한 달을 더 사시다가 하느님께로 가셨다. 하느님께서 누님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셨던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 가족 모두가 영세를 받았고 누님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동정녀로 살고 계시는데 누님은 우리 가족의 영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계신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그때부터 아현동 성당에 다녔지만 별로 신앙 생활에 재미가 없었고 나의 관심은 기타치며 노래하는 데에 가 있었다. 거의 매일 선배나 친구들과 어울려 기타치며 노래하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 인기 듀엣이었던 어니언스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을 보고 가수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교동에 있는 「초가집」이라는 업소에서 노래를 시작하였다. 또한 명동의 「오라오라」등에서 「매력있는 저음가수」라는 칭호를 받으며 다운타운가의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나의 소망은 인기가수왕이 되는 것이었고, 그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나의 신앙생활은 냉담으로 들어갔고 처음 고백성사를 보지 않을 때는 조금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었지만, 몇번 반복되다보니 거의 무감각하게되었다. 또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신앙이 없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뿐이었기에 나는 더욱 더 내 자신을 합리화하며 세속화되어 갔다.
나는 집에도 자주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과 노래하며 술을 즐기며 살았는데 그 당시 가족들 사이에 내 별명은 「고삿갓」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동석해야만 술판을 벌일 정도로 나를 좋아했고 나 또한 친구들을 좋아했다. 또한 토요일만 되면 나이트 클럽에 가서 밤새 음악과 술과 춤으로 시간을 자주 보냈다.
어렵게 들어갔던 대학생활도 친구들과의 음악생활로 보람없이 끝나버렸다. 또한 친한 친구와 명동길을 갈 때 예쁜 여자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나의 생활은 질서가 없어져 갔다.
이러한 냉담 생활 15년째 되던 어느 날(87년 3월) 둘째 누님께서 성령쇄신봉사회에서 주관하는 「4박5일 피정」티켓을 가지고 오셨다. 장소는 용인 영보수녀원이었다. 그 피정이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리라고는 나는 전혀 생각치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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