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 장발(루드비꼬) 선생께서는 만 100세를 넘기시고 지난 8일 멀리 이국땅에서 파란많은 큰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장발선생의 생애를 더듬어 생각할진대 선각자 또는 선구자란 단어가 잘 어울릴 성싶습니다. 20세 젊은 나이로 맨 처음의 신부 김대건 상을 그리셨습니다.
어찌 그런 발상을 하실 수가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25세 되던 해에는 멀고 먼 로마에 가셨습니다. 순교자 79위 시복식에 참석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성당에 최초의 벽화 즉 명동성당 14 사도상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 유명한 김대건 상을 다시 그렸습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순교자 골롬바 아녜스자매상을 그리셨습니다. 골롬바 아녜스자매는 장발선생께서 그림으로 표현하셨기 때문에 더욱 사랑 받는, 더욱 빛나는 순교자가 되셨습니다. 1920년대에 된 일들 입니다.
해방이 되고서는 이내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하는 데에 혼신을 다 하셨습니다. 서구식 미술교육의 틀을 이 땅에 확립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최초의 현대적 미술교육기관이 탄생한 것입니다. 교육의 이념과 체제를 훌륭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미술대학이 그 기본 틀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술은 진리 탐구의 일환이라 하는 것이 그 근간입니다.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59년 혜화동 성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장발선생께서 기획하시고 지휘감독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현대식 성당이 생기는 최초의 일입니다. 한국역사상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성당이 건립된 것입니다.
그보다 먼저 1954년에는 가톨릭미술가협회를 만드셨고 성미술전시회를 기획하셨습니다. 이 여러 일들이 지금의 한국가톨릭교회미술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1984년 20년만에 고국을 방문하시고 먼저 하신 일이 서울의 새 성당 순례였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만일 장발선생께서 5.16사태 등으로 인하여 미국행을 아니하셨더라면 오늘의 한국교회미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을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장발선생을 뵈올 일이 있었습니다. 95세를 넘긴 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장하였습니다. 그림 보는 눈이 마치 매가 새를 쫓는 기세와도 같았습니다. 그 너무도 예리함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장발선생께서는 노년에 성화를 많이 그리셨습니다. 김대건 신부상을 세 번째로 또 그리셨고 골롬바 아녜스 자매상도 또 그리셨습니다.
선생은 이제 영원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선구자의 고독을 안고서…. 끝내 그는 고국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큰 지성을 놓쳤습니다. 특히 한국 천주교로서는 참으로 귀한 등대같은 이였습니다. 언젠가 선생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놓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선생이시여. 모든 시름 다 놓으시고 이제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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