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업을 하는 조영수(38)씨.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아이 짐 싸서 처가에 두고 직장으로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 엄마도 직장을 다니는지라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늦은 결혼 때문에 두 아이가 모두 어리다. 큰 아이가 6살, 작은 아이가 3살이다.
큰 아이는 유치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 무리를 해서 데리고 있지만 작은 아이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처가에 두어야 하는 처지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아이가 부모와의 따뜻한 시간을 더 보내도록 하기 위해 목요일 저녁에는 집으로 데려와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금요일 아침에 다시 처가에 보내고 토요일 오후에 다시 데려온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인숙(32)씨는 아이 때문에 매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루종일 조바심을 쳐야 한다. 큰 아이가 이제 학교에 들어갔고 작은 아이는 5살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큰 아이도 어린이집을 다닐 때에는 저녁 늦게까지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둘 수 있어 크게 어려움을 없었지만 학교를 다니게 되자 하교시간이 12시30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어떻게든 오든지, 그것이 안되면 옆집의 아주머니집으로 가라고 하고 있다.
박수홍(29)씨의 경우는 더 심하다. 일가친척 대부분이 지방에 살고 서울에는 별반 연고가 없어 아이를 맡길 곳도 없고 하나 뿐인 아이도 이제 겨우 2살이어서 탁아원에 맡기기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지난해 현재 2세 이하 영아가 전국에 걸쳐 모두 197만명. 그 중에서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아이는 고작 11만9600여명에 불과하다. 올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개월 동안 실시한 「영유아 보육서비스 실태분석과 종합대책 수립에 관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2세 이하의 자녀를 둔 전국 1748명의 기혼 여성에 대한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3%가 안심하고 맡길 보육시설이 있다면 아이를 맡기겠다』고 답했다.
이를 전체 영아 수로 환산하면 약 110만명에 해당한다. 사실상의 보육수요가 현재 보육시설에 위탁되고 있는 영아 12만명의 9배가 넘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2세 이하 영아에 대한 보육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존 보육 시설들이 양과 질에서 이를 전혀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며 보고서는 5세 이하 아이들에 대한 보육 및 교육 정책을 완전히 재검토하고 정부 차원에서 시급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요청에 도달한다.
보육, 특히 맞벌이 부부들의 아이 키우기는 이제 전쟁 수준이다. 맞벌이 부부가 경제 활동을 하는 가정은 전체 가정의 절반에 가까운 40%에 달한다. 젊은 층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맞벌이 부부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아이 키우기이다. 맞벌이가 사회 전체의 큰 흐름이 된 상황에서 아이 키우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며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문제이다. 이는 현재의 심각한 보육 시스템의 부재 때문에 더욱 시급하다.
첫 아이를 낳은지 채 한 달도 안된 김은미(29)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시어머니는 새벽부터 장사를 나가시기 때문에 아이를 맡을 시간이 없고 친정 엄마는 신경통이 고질병이 되어 계단도 잘 못오르는 형편이라 아이를 업어 키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맞벌이 부부가 세금은 두 배로 내는데 왜 아이 키우는 일은 이렇게 대책이 전무한지 모르겠어요』
정부의 육아 정책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단다. 육아는 철저하게 개인문제로 귀결된다. 아이를 기를 시간이 없으면 아이를 낳지 말거나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당연한 논리이다.
직장에서도 육아 문제는 감히 말도 못 꺼낸다. 아이를 직접 기를 경우에는 사실 문제가 더 심각하다. 아이 때문에 조퇴하거나 지각, 또는 결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6개월 동안 친정에 아이를 맡기다가 다시 데려온 김은희(31)씨는 지난달 2번 조퇴했다. 아이를 데려오기로 했던 남편이 야근 때문에 퇴근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자신이 1시간 정도 먼저 퇴근을 해야 했고 한번은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서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온갖 눈총을 다 받아요. 직장에서 「아이 때문에…」어쩌고 하면 「아이 혼자 키우나」하는 비아냥거림이 돌아옵니다. 다 같은 처지일텐데 말이예요』
김씨는 그래서 지금 직장을 그만 둘 것을 생각 중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라는 생각에서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육아 문제 때문에 출산과 직장 둘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비율이 높다. 육아휴직제가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직장에서 이는 유명무실한 제도이다.
그러면 과연 육아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만한 대안은 없는가. 현재로서는 그렇게 전망이 밝지 못하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보육 시스템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고 질적으로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아이 키우기에 대한 인식 자체의 변화도 변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어려움을 다소간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예컨대 육아휴직제를 활성화한다거나 육아휴직의 변형인 단축근로시간제나 시차제 근무, 노동시간 변경 등 다양한 방안이 마련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물론 이같은 요청들이 IMF 경제 위기를 겪고 여전히 국가 경제의 어려움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기업가나 정부 정책 입안 담당자들의 입장에서는 호사스러운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국가 경제 활동에 가장 활발하게 참여하는 30대 직장인들, 또 능력있는 여성들의 잠재력이 육아 문제로 인해 사장되는 것은 오히려 손실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소중한 2세를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육아문제가 언제나 당사자인 부부의 몫에 그치고 특히 여성의 경우 사회적인 편견으로 「아이냐, 아니면 일이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
육아 문제를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해소해 줄 책임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지고 있는 것이다.
■ ‘맞벌이 육아’ 대책은 없나
직장내 설치된 보육시설 200여곳 뿐
지난해 육아휴직제 0.1% 실시
출산휴가 60일→90일 검토해야
현재 300인 이상의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내 보육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이를 실천하는 곳은 지난해 현재 222개 사업장에 불과하다. 의무조항이기는 하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벌칙 조항은 규정돼 있지 않다.
사용주들이 보육시설 설치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이용할 어린이가 적정하지 않은 등 다른 요인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여러 직장이 통합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거나 민간 보육시설에 위탁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제안이다.
육아휴직제의 경우 지난해 이 제도를 실시한 사업장은 전체의 0.1%에 불과하다. 이는 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대부분 여성들이 무급 휴직에 따른 생계 곤란과 복귀 후 예상되는 불이익에 대한 불안 때문에 육아 휴직 신청을 기피하게 된다.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가 1999년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내에 육아휴직 규정이 있다는 응답은 불과 8.9%, 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답변은 2%에 그쳤을 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분명히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지난 1999년 조사대상 1732개 기업 가운데 육아휴직이 한 차례 이상 실시된 곳은 40개소, 전체의 2.3% 뿐이다. 무급 휴가인데다가 복직 자체가 불투명해 직장인들이 신청하기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출산 휴가의 경우 60일에서 90일로 늘리는 문제도 자주 논의된다. 여기에 육아 휴직 때 개인에게도 고용보험기금에서 임금 30%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모성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기업 부담을 우려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회와 정부의 대책이 미흡한 가운데 현재 맞벌이 부부 개인들은 공동체적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들이 조합을 설립해 전국에 13개의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공동육아연구원」도 그 중 하나. 각자 설립자금을 출자하고 직접 운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보육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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