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제는 나쁘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고, 문제가 없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긴다. 때문에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다 잘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의 참된 속성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공동체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도 역시 많은 문제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신앙을 가지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상은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왜 그런가 하면 참된 신앙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하는 것이고, 문제없는 삶이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문제에 함몰되지 않고 그 문제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참된 신앙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신의 존재」문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어떤 경우에는 이해되는 듯도 하지만 그러나 삶의 위기의 순간 다시 한번 질문해보면 또 다시 의문부호를 붙일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인 것이다. 필자도 역시 살아가면서 이같은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 많은 위로를 받은 체험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경남 진주에 한 양로원이 있는데 그곳을 신부가 되고 나서 얼마 후 방문하게 되었다. 봉사자들의 모습과 노인들의 모습 그리고 역한 약 냄새와 노인들의 냄새가 그곳의 첫 인상이었다. 어떻든 그곳에서 하룻밤 묵어 갈 예정으로 잠을 청했지만, 건물 곳곳에 배어 있는 냄새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새벽녘 간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광주로 떠나게 되었다.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양로원에서의 짧은 20시간 정도의 생활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눈에 스쳐 지나가는 모습은 낮에 환자 노인들의 오물을 치우는 한 수녀의 웃고 떠드는 모습이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할까! 나는 단 하루도 살기 힘들어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 화가 나서 새벽녘 인사도 못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는데, 어떻게 그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오물을 치우면서 까지 웃고 떠들을 수 있을까?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무어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그때 그곳 봉사자들의 모습 속에 하느님이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역시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똑같이 더러움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그 역겨움과 더러움을 느끼면서 그것을 인간적인 의지로만 이겨내려 한다면 그들은 결국 지쳐버리고 말리라. 아마도 하느님이 그들을 변화시켜 주지 않고 위로해 주지 않는다면 그러한 생활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후 그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오늘날 하느님이 당신을 계시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봉사자들의 모습을 통해서일 것이다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 유명한 토마 사도의 이야기이다. 토마 사도는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과 발의 상처를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 라고 고집하고 결국 예수님을 뵙고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완전한 신앙고백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토마 사도의 이러한 성향 때문에 어떤 이들은 토마 사도를 의심이 많은 사람, 또는 보고야 믿는 합리적이고 명확한 사람, 실제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요구하는 현대인과 같은 사람 등 특별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토마 사도는 항상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때로는 의심과 회의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마 사도의 『나는 그분의 상처를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란 그 말은 단지 그분의 상처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기보다는 정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하고 싶다는 절규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바로 토마 사도의 이러한 소망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예수님을 뵙고 흔들리는 신앙에 대한 위로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하나의 가능성을 1독서에서 찾을 수 있다. 1독서에서는 초대교회시대의 사람들에게 「기적과 놀라운 일들」이 하느님 현존의 간접 증거였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분명 모습과 방법은 달리 할지라도 그분의 현존을 보여줄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여겨졌고 그 하나의 해답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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