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년 들어 「아버지 애가(哀歌)」 시대를 맞고 있다. 불황과 조기퇴직 물결로 실의에 빠진 가장들이 양산되면서 이 시대를 사는 아버지들이 급격히 하찮고 초라해지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고개 숙인 아버지」란 유행어가 나돌 정도다.
매스컴도 이런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최근 TV에 비쳐지는 남성상은 대체로 연약한 모습이고, 이에 반해 여성상은 당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본지는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오늘날 아버지들의 현 실태를 진단해본다.
한 집안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그야말로 앞만 보고 뛰어 왔다. 인생을 송두리째 오직 회사만을 위해 바쳤다. 그런데 그 회사들이 이제 아버지들을 버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회사 일에 청춘을 불사를 때 가정은 병들어 갔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사실상 사라진 가정의 모든 문제는 엄마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됐다. 자녀 교육도, 용돈도, 가정의 모든 대소사가 엄마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시간의 여유조차 없었다. 아버지들은 어쩌다 한번 쉬는 날 식사 한끼 하는 것으로 그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간에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가 있을 리 만무하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자녀들은 대충 대충 『예』 『아니오』 혹은 『아빠는 몰라도 돼요』라는 말로 얼버무려 버린다. 그야말로 아버지 없이도 완벽하게 돌아가는 가정 질서에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부권의 파괴
우리나라의 경우는 IMF 사태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구조조정)이 전통적인 남성의 권력과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대대적인 「공헌」을 했다.
IMF 이전의「거품 경제」시대에도 각 가정의 가장들은 아침「못먹고」출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단지 「돈 벌어오는 기계」 쯤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세태였다. 최근 어느 조사 통계에 따르면 40대 직장인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에 불과하고, 잠자는 시간 등을 빼면 가족들과 얼굴 맞대는 시간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도 그런 역할을 통해서나마 가까스로 부권(父權)을 지킬 수 있었으나, IMF 사태는 이 땅의 남성들에게서 최소한의 권위마저도 박탈해 공원이나 산에서 방황하게 만들었다. 가정은 해체됐고, 노숙자들이 양산됐으며, 「가정 지킴이」로서의 부권은 파괴됐다.
가장 활동이 왕성한 40대 남자 사망률의 경우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인 것으로 조사 통계에서 밝혀지고 있다. 또 50대 남성의 22%는 매일 술을 마시며, 남성 흡연율은 61%로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가입국들중 가장 높다. 그뿐인가.
해마다 산업 재해로 2600여명이 죽고 있다. 그 중에서 3/4는 과로로 인한 돌연사 즉 스트레스로 생긴 심장병,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
이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탈진하게 되면 심한 경우 자살에까지 이르게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장들이 실직 등 경제적 문제로 비관하다 잇달아 목숨을 끊었던 사례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위축된 가장의 권위
가정에 따라 가장으로서의 권위나 역할이 축소돼 그 지위가 상실된 채 단순히 아이들의 친구나 낯익은 손님 같은 위치로 전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바쁜 시간에 쫓겨 휴일에도 자녀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는, 아버지가 담당해야할 교육적 역할 수행은 고사하고 우선은 아이들과 친숙하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가정에서의 아버지 모습을 알아보는 면담조사에서 아이들에게 비쳐지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대단치 않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던져주었다. 더구나 10%에 가까운 아이들이 귀가한 아버지가 TV나 신문을 보고 있거나, 혹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는 모습에 익숙해 있다고 응답했다.
가정교육의 기본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한 가정의 정신적 지주로서 다양한 역할 수행의 대표자이다. 아버지의 사회, 경제적 지위나 권위는 직접·간접적으로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이웃이나 외부 사회와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는 한 가정을 보호하는 울타리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아버지의 역할과 관련, 자녀에게 건전한 가치관과 질서를 가르쳐 주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단호하고도 엄한 가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조건과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최소한의 권위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정교육은 바람직한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을 두 개의 축으로 해서 이뤄지는 양부모교육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자녀 교육은 아버지의 합리적이고도 냉철한 교육적 판단과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이 담긴 섬세한 지도가 조화를 이룰 때 이상적이다.
교회의 역할과 사명
그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을 위해 교회가 담당해야할 역할은 무엇일까? 일찍이 교회는 미래의 복음화가 「가정 교회」에 달려 있음을 확신하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왔다.
이는 한 가정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고, 결국 가정 성화를 통해 실추된 아버지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최근 열렸던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 축일을 중심으로 하는 한 주간을 한국 천주교회의 「가정 성화」 주간으로 정하여, 가정 성화의 중요성을 널리 일깨워 나갈 계획이다.
또한 각 본당에서는 매월 가정 미사 등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자주 마련하며 가족간의 화합과 일치를 돕고 있다. 교회 일선 사목자들은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아버지들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다양한 사목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사목자들은 힘든 삶 속에서도 가장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나가고, 무엇보다 참 신앙인으로서 충실히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교육이나 피정 등을 상시 마련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아울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가족 프로그램을 개설, 서로의 위치와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 안에 가족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버지들이 본당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한주일간 힘들었던 모든 스트레스를 신앙생활을 충실히 함으로써 씻어내고 새로운 활력과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사목자들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겚냠꼭 3월 18일 바티칸시티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집전한 정례미사에서 가난한 가정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그들이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축복을 보내고 싶다』고 전하고 『아버지의 모범인 성 요셉이 오늘날의 아버지에게 훌륭한 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1. 자녀와 여행을 하자
자녀와 돈독한 관계를 만들자면 좋은 추억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행, 바둑, 등산, 요리, 운동 등을 같이하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2. 자녀를 칭찬해주자
자녀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도록 하자. 장점을 인정해주고 격려해준다면 단점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3. 자녀의 학교에 가보자
아버지들이 한 학기에 한 번이라도 자녀가 공부하는 교실을 찾아가 보자. 그리고 선생님과 자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4. 가족에게 편지를 써 보자
가끔 아내에게는 감사의 편지를, 자녀들에게는 사랑의 편지를 써보자. 백마디의 말보다 한줄의 글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5. 일주일에 하루 가족의 날로 정하자
바쁜 생활 중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과 저녁식사를 포함한 시간을 가지자.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6. 아버지도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주자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이지 말자. 아버지도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을 수 있는 인간임을 보이자.
7. 약속을 잘 지키자
사회를 탓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면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이 살게 될 것이다.
■ 외국의 아버지 날
1909년부터 「아버지의 날」을 제정한 미국은 1972년부터 6월 셋째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확정하고 이를 미국인 전체의 매주 중요한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
또한 세계 20개국에서 현재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나라로는 호주와 이탈리아가 있다. 호주에서는 매년 9월 6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해 기념하면서 이날만큼은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좋은 일은 다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엔 자녀들이 케이크나 음식을 주문해 가족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넥타이, 지갑, 열쇠고리 등 작은 마음의 선물을 아버지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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