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3년만에 닥친 불황이 단란했던 가정을 다시 산산조각 내고 있다. 결식 아동과 청소년 수가 크게 증가했으며 빈곤층 이혼과 노인 가출, 이민 등 「가정 결속도」를 나타내는 모든 사회적 지표들이 악화됐다. 문제는 대량실업에 의한 가정해체로 단순화할 수 있었던 IMF 때에 비해 현재 진행중인 가정해체 현상은 그 양태나 정도가 훨씬 심각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 가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 교회이자 사랑의 원천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현재 우리나라 가정들이 처한 실태를 살펴보고 교회가 담당해야할 과제를 짚어본다.
가정붕괴 실태
올 2월부터 경기도 안산시 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미영(6·가명)·석훈(4·가명) 남매.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는 지난해부터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최근 가출했다. 이후 아버지가 폭력사건에 연류돼 구속되면서 남매는 이 복지시설에 맡겨졌다. 복지시설 관계자는 남매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남매 모두 영양실조와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가정을 잃은 충격 때문인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고 다른 사람과 말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마치 자폐증 환자 같았다』더 큰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가정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벤처회사를 차렸으나 수익을 내지 못하자 『가족 보기 부끄럽다』며 집을 나와 하숙을 하고 있는 김모씨(34)의 경우가 그 예다. 또 『한국이 싫다』며 부모나 자녀와 이별하거나 아예 이민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민알선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일가족 전체 이민이 대다수였으나, 최근엔 개별이민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악화되는 지표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의 결식 초등학생 수는 98년 1만5572명, 99년 1만9008명이었던 것이 지난해의 경우 9월까지만 해도 2만236명으로 급증했다. 결식 중학생도 지난해 9월까지 7446명으로 99년 4115명을 훌쩍 넘었고 결식 고교생은 99년 8763명의 2배가 넘는 1만8595명을 기록했다. 결식아동은 대부분 부모가 이혼하거나 아예 집을 나가는 등의 극단적인 가정해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드러났다.
또 서울 가정법원이 집계한 지난해 이혼 재판건수는 9742건으로 IMF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던 98년(9302건)이나 99년(1만52건)과 비슷한 수준. 하지만 빈곤층의 이혼은 증가 추세다. 빈곤층이 주로 법률상담을 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이혼이나 양육권 분쟁 등 「가사 호적부문」관련 법률상담이 6만5377건으로 99년 같은 기간의 5만5485건보다 크게 증가했다.
아울러 지난해 경찰청 가출 신고센터에 접수된 60세 이상 노인 가출은 2810명으로 한달 평균 23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98년 2078명은 물론 99년 2549명도 훨씬 뛰어넘은 수치다.
어려울수록 따뜻한 사랑을
가정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에 접어들어 급속한 발전을 이루면서 확립된 「가장은 역시 돈을 벌어야 제 역할을 다한다」는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런 사고 때문에 돈을 못 버는 가장은 스스로 위신이 추락했다고 느끼며 가정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 교수는 『가장의 실직 등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그로 인해 가장들이 갖게 되는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다」는 식의 심리적 공백이 가정 해체 현상의 더 큰 원인』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더 따뜻이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초교회인 가정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정의 성화와 쇄신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초교회로서의 가정, 사랑의 원천으로서의 가정을 일구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한국 교회가 발전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효와 질서의 기초이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덕행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가 가정임을 재인식하고, 이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부모들은 가정 사목의 목표가 나자렛 성가정의 수호아래 가정의 성화와 행복을 조성하는데 있는 만큼 자녀들의 사랑교육, 신앙교육, 전인교육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아질 때 모든 가정이 인간적 완성과 구원 성화의 길을 더욱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급변하고 있으며, 현대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끼친 각종 변화의 여파를 현대 가정은 벗어날 수 없다. 날로 심화돼가는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생명경시 풍조, 이혼의 증가와 경제 파탄 등으로 가정이 파괴돼가는 위기에 당면해 있다.
이러한 가정의 위기에 대해 교회는 책임을 느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현대 세계 안에서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와 교회의 안녕이 바로 건전한 가정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명을 절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 나그네 길에서 가정이 첫째가는 길이요, 가장 중요한 길로서 가정이 교회의 길이다』라고 선포했다.
교회의 사명
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목국 가정사목부가 지난해 발표한 가정사목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정문제 해결에 대한 종교의 기여도」부분에 대해 응답자의 48.3%가 종교가 가정생활의 문제에 해답을 준다고 답했으며, 45.4%가 약간 그런편이다라며 소극적인 동의를 보였다. 반면 가정행복에서 신앙의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는 89.3%가 중요하다고 응답해 향후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신자들의 신앙성숙을 적극적으로 돕고 배려하는 것이 곧 가정성화를 활성화시키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가늠할 수 있다.
교회 관계자들은 세상이 달라졌고 가정이 병들었다고 문제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현재 우리 가정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을 위한 교회의 가르침을 공부할 수 있도록 교회의 사목계획안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제도적인 방법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교회가 가정의 문헌을 모든 이들이 알 수 있도록 본당에서 가정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시해야 한다.
가정이 사회와 교회의 기초이며 활력 있는 세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기 위해서는 변화되는 세상 안에서 불변하는 진리, 가치관 교육이 가장 시급하다. 특히 교회는 가정 성화와 쇄신을 위한 교육을 위해 가정사목을 위한 전담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의 연구와 활동을 활성화시켜나가는데 적극 앞장서야 할 것이다.
* 좋은 가정교육을 위한 10계
1. 부모는 진정한 사랑으로 자애롭게 행동하며, 스스로 효를 실천한다.
2.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삼가 하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3.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고 형제자매를 똑같이 대한다.
4. 어린 자녀는 자주 안아 주고 커가면 따뜻한 말로 사랑을 표현한다.
5. 자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믿고 기다려 준다.
6. 화나는 일도 참고 이해하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7. 자녀에게 「안녕」「고마워」「미안해」라는 말을 자주하고 바른 인사법을 가르친다.
8. 집안 일을 고루 시키고 힘든 일도 스스로 책임지고 완수할 기회를 준다.
9. 옳고 그름을 일관되게 가르치고 작은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킨다.
10.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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