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위기라고 한다. 이 위기는 그대로 이어져 삶에서마저 위기감이 커져가고 있다. 이 위기의 진원지를 모범이 되는 참스승, 원로의 부재에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정한 스승이 사라졌다는 오늘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더욱 참다운 스승, 스승의 상이 요구된다. 스러지지 않은 역사, 넘어지지 않는 사람 뒤에는 위대한 부모보다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스승의 위대함은 위대한 가르침을 전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제자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먼저 살았음에서 나온다. 스승의 위대함은 자신의 가르침을 몸소 살아가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진정한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라는 탁월한 스승이 있다. 몸바쳐 따를 수 있는 영원한 스승, 과거와 현재를 넘어서 진정한 스승이자 인류의 스승인 예수를 통해 참스승의 상을 되새겨본다.
예수통해 드러난 참스승 상
예수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제자들을 선택하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공동체를 이뤘다. 제자들을 벗이라 불렀고 가까이 두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보고 듣게 함으로써 살아있는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승으로서 예수의 이같은 태도는 하느님나라가 이 땅 위에 실현되게 하려는 뚜렷한 목적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삶은 자신을 통해 하느님나라를 미리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나온 예수의 가르침은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사람의 「눈높이」에 맞는 것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흘러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명백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권위가 있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제자와 눈높이를 같이 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스승이 뽑는 일반적인 제자들은 어느 정도 싹이 보이는 이들인데 비해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의 안목으로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성서 속에서는 때로는 어리석고 깨달음에도 느려 따로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가르치고,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누구보다 기뻐하는 예수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존재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예수의 모습은 제자의 몫을 찾아주는 따뜻한 스승의 상이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지닌 제자들의 몫을 발견토록 이끌고 키워주는 게 스승의 몫인 것이다. 잘난 제자만을 바라보고 뛰어난 이만 키우는 오늘날 적잖은 생각을 품게 하는 부분이다.
온유·겸손함 지닌 스승
예수의 가르침은 살아있어 제자들을 변화시켰으나 그들을 앞질러 가지는 않았다. 예수는 토마스와 같이 실수와 오만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제자들도 원망하지 않았고 시련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그는 나약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라며 제자들의 배반과 이해타산적인 태도마저 따뜻이 감싸안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제자들이 온전히 예수의 뒤를 따르게 하는 힘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런 스승 그리스도를 한마디로 「온유하고 관대하신 분」(2고린 10, 1)이라고 특징짓고 있다.
또한 예수는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동일시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생하는 이들을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인도한 따뜻하고 겸손한 스승이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손수 빵을 나눠주고 생선을 구워주는 이야기(요한 21,13) 등은 온유와 겸손을 갖춘 성숙한 인간과 만나게 해준다.
하느님에게서 위로 찾아
십자가에 매달려 옛 의인들의 탄원기도(시편 22편)를 올리는 예수의 죽음의 모습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하느님에게서 위로를 찾는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생전의 예수를 제대로 알아보기엔 믿음도 부족하고 지혜도 부족한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는 당신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맡겼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새로운 초대를 하심으로써 제자들은 무지한 군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벗이라고 불린다(요한 15, 14). 예수는 벗에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준다고 약속함으로써 하느님에게서 참 위로를 찾도록 이끄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대가 요구하는 스승과 제자
제자는 스승에게 배우며 스승을 닮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스승이라는 위치는 영혼을 빚어 만드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함께하는 동참자이자 하느님의 대리자로 인간의 영혼 속에 구체적인 하느님의 형상을 새겨 넣는 존재다. 이런 까닭에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는 기술과 아울러 영혼에 감동을 주는 열정과 눈물이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열정과 눈물이 점차 사라짐으로 인해 스승은 없고 가르치는 직업인만이 있는 세상,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예수는 가르침이 훌륭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과 땀으로 가르쳤다는 점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다는 점에서 위대한 스승이었다. 흘렸던 눈물과 땀만큼 제자들은 변화되었고, 제자들이 변화된 만큼 공동체와 세상이 변화되어 갔기에 초대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의 모범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스승이 되어야
스승의 눈물과 말 한마디가 지니는 힘은 지대하다. 교단에서, 교회에서 눈물이 사라질 때 교단과 교회는 더 이상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주일학교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흘리는 눈물에 비례해 학생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교단에서 눈물이 사라지고 삶에서 십자가의 정신이 사라진다면 예수의 제자들인 신자들은 영적 성숙을 기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진다.
적잖은 사목자와 교사들이 있는데도 스승이 없다는 소리가 우리 교회에서도 점점 커져간다. 이는 참 스승이신 예수를 닮은 스승이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한국교회 쇄신과 발전의 희망은 무엇보다도 사목자가 참스승으로 거듭나는 데 있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완벽한 교사요 스승으로 몸소 가르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제자들의 가능성을 믿음으로써 제자들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한 예수와 제자된 신자의 관계를 새롭게 돌아보는 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
예수는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루가 14, 33)고 직접 당신의 제자가 되는 길을 분명히 밝힌다.
제자의 사명은 더 많은 제자를 퍼드려 많은 영혼 가운데서 하느님나라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무리를 제자를 삼는 일에 있어 예수는 겸손이라는 덕목을 앞세웠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의 행동은 봉사와 섬김의 의미를 보여준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써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역설하는 예수는 종의 몫을 택할 때 당신을 닮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으로 가난한 사람, 그래서 아이와 같이 되고서야 참 제자가 될 수 있음을 예수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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