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 28).
1935년 12월 8일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리 자그마한 시골본당. 맑은 눈빛의 여섯 동정녀들은 차디찬 겨울바람을 무색케하는 뜨거운 열의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장 낮은 자리, 이들이 택한 몫이었다. 그리고 60년도 훨씬 지난 지금은 500여명의 회원들이 한결같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를 채우는 삶을 엮어가고 있다.
예수 성심 시녀회(총원장=이광옥 스콜라스티카). 「시녀」는 「가까이에서 시중드는 계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 「시녀」이기를, 시중들기를 자청하고 그것에서 가장 큰 기쁨을 얻는 이들이 모인 수도공동체가 바로 예수 성심 시녀회다. 이들은 예수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며 착하고 충실한 종으로, 언제나 주인이 원하는 것을 찾아 돕는 「주님 손 안에 연장」으로 대기하고 있다.
예수 성심 시녀회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본당일을 도우며 살겠다는 결심으로 모인 여섯명의 동정녀들로부터 시작된다.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 남대영) 신부는 이들을 위해 청빈·순명·정결을 의미하는 「삼덕당(三德當)」이란 작은 공동체를 마련했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이자 사회사업가로 활동한 루이 델랑드 신부는 세상의 모든 사람, 특히 가장 불쌍한 사람들 안에 예수 성심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게 됐다. 1923년 6월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델랑드 신부는 1934년 4월 16일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본당에 부임하자 마을 아이들을 모아 교육시키고 무료 진료소를 마련했다. 얼마 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마음먹고 헌신적으로 봉사할 이들을 찾게 된다.
1936년 초 길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 한분과 두명의 어린이를 데려다 보살피면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확장해 나갔다. 46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성모 자애원을 공식적으로 설립했고 희생과 봉사의 뜻에 따라 보육원, 재활원, 양로원, 무료 진료소, 급식소, 나환우 정착촌 등으로 사회복지사업은 널리 전개됐다. 일제의 탄압 아래 옥살이와 배를 곯는 어려움이 말할 수 없이 컸지만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손길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희생과 봉사의 사업에 동참하는 지원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노인, 어린이, 불구자들이 늘자 공동체는 창립자 델랑드 신부를 따라 영천본당을 떠나 포항 송정으로 터를 옮긴다. 포항으로 옮긴 지 3개월만에 6·25 전쟁을 겪게 되고 갑자기 불어난 전쟁고아들도 받아들여 할 일은 더욱 늘어났다.
전쟁 중이던 52년 9월 8일 대구 대목구로부터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수도회 인준을 받고 7명의 동정녀들이 첫 수련을 시작했다. 63년 9월 14일에는 서정길 대구 대교구장이 공식적으로 회헌 승인을 반포했고, 바로 다음날 13명의 회원이 첫 종신서원을 했다. 65년 3월 25일에는 첫 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총원장에 김장주(벨라뎃다)수녀를 선출했다.
67년, 수녀원 부지가 포항제철 부지로 선정됨에 따라 69년 1월 포항 대잠동으로 수녀원을 이전하게 됐고, 수련소는 대구시 대명동으로 옮겼다. 수녀원을 이전하면서 수녀들이 직접 나서 공사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경비절감을 위해 송정 수녀원의 철근, 목재 등을 비롯해 깨진 벽돌까지도 포항으로 날라 새 수녀원을 짓는데 이용하는 모습에 포항시민들로부터 「지독히 알뜰한 사람들」「천원짜리 일군들」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88년 4월 9일 제6차 총회에서는 본원과 모원을 분리하기로 결정, 모원은 포항 대잠동에 그대로 두고 본원은 92년 3월에 대구로 이전했다. 또한 수도회의 이름을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에서 「예수 성심 시녀회」로 바꾸게 된다.
그동안 성모 자애원은 1000여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양육했으나 전쟁고아는 없어진 지 오래됐고, 경제성장과 산아조절 등으로 기아의 발생이 급격히 줄어 77년 6월 3일에 고아들을 돌보던 자리에 현 「포항 성모 병원」을 세우고 의료봉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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