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손으로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가슴에 파묻히던 꼬마녀석. 어느새 훌쩍 커 부모의 품을 떠나버렸다. 그래도 이날이면 머쓱한 모습으로 다가와 꽃을 꽂아주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아들이 준 꽃을 받아보지 못했다. 매년 「뭐 하러 이런걸 샀어」라며 한마디씩 했지만 내심 꽃을 준비해둔 아들이 기다려졌다. 카네이션 꽃 한송이가 무엇이길래, 어버이날이 무엇이길래….
「하느님 일」을 위해 떠난 아들, 딸들인데 아무 것도 아닌 이날, 왜이리 자식들이 그리워 가슴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러나 이젠 가슴에 쌓이는 그리움과 눈물대신 함박 웃음을 짓기로 했다.
예수고난회(준관구장=김준수 신부)가 20년 가까이 어버이날 마련해온 「성직자 수도자 부모님 피정」. 매년 제주도 남단에서부터 광주, 청주, 수원 그리고 서울 등지에서 90명이 넘는 부모님들이 함께 한다. 많은 수도자, 사제들의 부모들이 한데 모여 시간을 같이 보내며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기도하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련했던 가슴 한구석에서 기쁨이 샘솟는다. 이 시간은 예수고난회 수도자들이 많은 이들을 대신해 반듯하게 키워서 하느님 부르심 받도록 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늘 넘쳐나는 부모님 사랑에 또한 감사드리기 위해서 만든 자리다. 감사의 뜻을 헤아리고 부모들의 고충을 나누기에 충분해서인지 10년이 넘도록 매년 다녀가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예수고난회는 한해는 명상의 집에서 1박2일간 피정을, 다음해는 성지순례와 관광을 겸한 2박3일 피정을 마련해 어른들을 모신다. 격년으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나섰지만 최근 4년간은 나라가 어려워 그것도 못했다. 올해 다시 나들이를 시작했다. 매년 명상의 집에 피정을 다녀간 이들에게 이런 취지를 전하고 적지 않은 기금을 모아왔지만 올해는 예수고난회 수도자들이 여기저기서 정성을 모았다. 피정이 시작된 5월 7일, 낯익은 얼굴들이 오랜만에 만나 인사 나누고 강의 듣고 기도했다. 인사로 시작된 이야기는 끝없이 풍성했다. 한사람의 사제, 수도자가 되기까지 가슴 졸이며 기도했던 시간들, 행여나 아들, 딸에게 흠이 될까 조심스럽게 살아온 이야기…. 사람들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모두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으며 서로의 맘을 어루만져 주었다. 다음날 아침엔 수도자들과 봉사자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한송이씩 달아드렸다. 눈시울을 적시는 부모들이 있어 예수고난회 가족들이 맘 아파하기도 했지만 이내 다들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단양 충주호 유람선 나들이. 단양팔경의 절경을 둘러보는 일도 아들 같은 수도자와 봉사자들이 함께해 주었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듯 했다. 유람을 즐긴 다음 이른 배론성지에서는 다시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기도로서 뜻을 모았다. 삶의 무게로 어깨가 내려앉은 아버지들, 흰서리가 내린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조금이나마 위로키 위해 마련한 마지막 시간은 온천관광이었다. 짧은 여정이지만 아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하느님의 보답으로는 더 바랄게 없는 선물이다.
전국 교구의 다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성직자, 수도자들의 부모님이기에 그들의 몸에도 수도자, 성직자의 자세가 몸에 베인 어른들. 맏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한 김수옥(율리안나·67·서울 아현동본당)·조기표(돈보스꼬·67)부부처럼 피정에 함께 한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늘 기도하죠. 잠들때까지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사제로 불러주셔셔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아들 신부가 거룩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신부님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해 안타까워하지만 늘 주님 안에서 함께 사는 걸요』
그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친 아브라함의 맘처럼 말이다. 인간적으로 아플 때도 있지만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 이 땅 모든 성직자, 수도자 부모들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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