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호스피스가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호스피스 학회가 최근 창립됐다.
아시아 태평양 호스피스 학회(Asia Pacific Hospice Palliative Care Network, APHN)는 5월 2~5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제4차 학회를 개최하고 이에 앞서 1일 창립총회를 열어 미주, 유럽 대륙에 이어 아시아 지역의 호스피스 학회 출범을 알렸다.
APHN에는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 국가의 호스피스 기관과 개인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APHN에 등록된 한국의 호스피스 기관과 단체는 28개로 특히 이번 창립총회에서는 가톨릭대 성모병원 홍영선(안드레아) 교수와 서울대 의대 허대석(프란치스코) 교수가 임원으로 선임됐다.
이번 학회에서는 의료기술 외에도 영적 상담, 자원봉사자, 철학, 윤리적 문제 등 호스피스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한국 대표로는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한국호스피스협회 회원 30여명이 참석했으며 그중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이경식(바오로) 교수, 홍영선 교수, 허대석 교수가 공식 발표자로 초청돼 발제를 맡았다.
차기 학회는 2003년 3월 오사카에서 개최될 계획이며 한국은 2005년 개최국으로 예정돼 있다. 이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중심으로 호스피스 활동에 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이와 관련한 교회의 역할과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다.
호스피스와 종교
죽음 앞에서 존재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말기 환자들에게는 영적인 돌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의 병의 상태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들의 두려움과 희망, 신앙 등에 관한 문제를 명확히 알 수 있길 원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평화가 있을 때 삶을 행복하게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호스피스에서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이 겪게 되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인 도움을 의료진, 종교인, 사회사업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다방면으로 제공한다.
19세기초 수녀들이 임종자들을 한데 모아 돌보던 집을 호스피스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 호스피스와 종교의 관계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긴밀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호스피스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종교였으며 아직도 대부분 호스피스 단체와 기관들을 각 종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의 종교적 선택을 존중하고 운영기관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호스피스 영적 활동의 철칙이다.
최초의 호스피스 기관인 영국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에서 15년간 영적 상담을 해온 바바라 몬로(Barbara Monroe)씨는 관련 발표를 통해 『아시아와 같은 다종교 국가에서 타종교, 무종교인에게 영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며 『호스피스가 선교의 수단으로 잘못 이해되어 환자들이 이를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스피스와 안락사
인간의 삶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안락사에 대해 호스피스 관계자들은 이를 「윤리적, 의학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잘라 말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비 부담, 치료에 따른 육체적 고통, 삶의 의미 상실 등으로 생명을 포기하고 인위적으로 끊으려고 생각하는데 반해 호스피스는 환자 하나 하나에 대한 다각적인 도움을 통해 이러한 생각을 방지하고 죽음 속에서 부활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끈다.
치료 가망성이 없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과잉진료를 하지 않으면서 통증을 감소시키고 질병 악화를 막아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호스피스 치료의 목적이다. 실제로 대만의 경우 지난해 7월 호스피스를 제도화하는 법령이 제정됨에 따라 말기 환자들이 호스피스의 의학적인 치료 아래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안락사를 찬성하던 여론이 변화한 바 있다.
한국 호스피스의 발전 과제
지역별로 호스피스 기관이 갖춰져 있는 선진국처럼 한국에서도 호스피스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의 호스피스 기관은 60여개로 이들이 더욱 발전하지 못하고 대부분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 설립을 꺼리는 까닭은 현행 의료보험제도상 일반 병동의 수가보다 호스피스 병동의 수가가 낮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수술을 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진통제 투여 등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넉넉히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치료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과잉진료로 많은 의료비가 들어가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호스피스에 대해 별도의 보험 수가를 마련하고 호스피스 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은 전체 사회 비용의 측면에서 오히려 비용을 경감시킬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호스피스 전문의 제도를 두고 있는데 반해 현재 한국에서는 일부 관심 있는 의료진들에 의해서만 호스피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대만, 일본 등 아시아의 선진 국가들은 최근 잇따라 호스피스 전문의 제도를 신설하고 나섰으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의과대학내의 정규 교과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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