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정녕 천주를 계속 믿겠단 말이냐! 지금이라도 배교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내 집에 있어도 이보다 더 편할 순 없구나. 나는 죽어도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으리라』
신자들의 대답에 포졸들은 사정없이 몽둥이를 내리친다. 끊임없는 호통과 거칠게 밀어대는 힘에 무릎으로 기어 감옥까지 압송된다. 짚이 깔린 컴컴한 감옥에 갇혀서도 신자들의 기도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한쪽에선 주리를 틀리며 지르는 비명소리며 『네 이놈 아직도 천주를 믿겠느냐』며 내리쳐대는 곤장소리가 소란하다.
위협적인 북소리, 칼을 휘두르며 겁을 주는 망나니의 으름장에 소름이 돋는다. 검은 포를 쓰고 칼이 내리쳐지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은 긴장의 극치. 그 가운데서도 신자들을 생매장한 무덤 속에서는 묵주기도 소리에 이어 성가합창 소리가 아련히 울린다.
지난 20일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에서는 재빠르던 일상에서의 시간이 잠시 멈춰 200여년 전으로 돌아갔다. 이날 서울, 부산 등 각지에서 모여든 신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가졌다.
전주교구에서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 마련한 「순교역사체험」. 비록 예전 순교자들이 겪었던 고통에 비할 순 없겠지만 우리 신앙선조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어가며 지켜온 신앙, 그 신앙을 뼛속 깊이 다시금 되새기는 기회였다.
이 체험에서는 교인들을 색출해 배교를 강요하고 체포, 옥중체험,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는 형틀체험, 생매장 등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용되는 모든 도구들은 호남교회사연구소(소장=김진소 신부)가 제공한 고증자료에 근거해 실제와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됐다.
처음엔 그저 장난이려니 하며 웃고 있던 이들은 가톨릭예술단원들의 서슬 퍼런 호통과 실제 내리치는 매질에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단계 한단계 실제처럼 진행되는 박해 과정을 경험하면서 어린아이들의 얼굴까지도 숙연함이 가득했다. 『난 하느님을 믿는다』고 소리치는 한 할머니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큰거리는 엉덩이를 감싸쥐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무덤에서 걸어나온 이들은 「부활했다」고 소리치기도.
가족끼리 나들이왔다가 우연히 참가하게 됐다는 김인태(베네딕도·대전 대흥동본당)씨는 『무덤에 생매장 당했을 때는 연극임을 알면서도 정말 최후를 맞는 듯한 마음에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순교체험이 『죽어야 산다』는 은총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사목국장 김준호 신부는 『모진 고문에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신앙을 지킨 선조들을 생각하면 작은 불편함에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며 『이날의 체험을 계기로 일상생활 안에서 작은 일에서부터 신앙의 힘으로 참고 희생하며, 순교정신으로 승화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강조했다.
전주교구는 6월 6일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지순례 및 순교역사체험,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마련한다. 또 낮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과 본당 제단체장들을 위한 순교역사체험장을 7, 8월에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전주교구는 9월에 열리는 요안·루갈다제 행사의 하나로 전국 신자들을 대상으로 당일과 1박2일에 걸친 순교체험 성지순례 및 성지순례를 마련하고 신청을 받고 있다.
※ 신청 및 문의=(063)285-0041~3 전주교구 사목국
홈페이지 : http://www.joanlugarta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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