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버지와 아들이 소를 끌고 밭을 갈러 갔다. 아버지가 밭을 갈 때는 똑바로 골이 졌으나, 아들이 밭을 갈 때는 골이 비뚤 비뚤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께 질문한다. 『어떻게 하면 골이 비뚤어지지 않고 똑바로 갈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밭을 똑바로 갈기 위해서는 목표를 밭의 끝에 두라고. 밭의 끝 지점에 목표를 두고 그것을 기준으로 소를 몰라고, 밭이랑이 비뚤어지는 이유는 중간 중간에 목표를 두고 그곳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코비 박사는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될 습관 중의 하나로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자신의 최후 순간에 갖고 싶은 이미지나 모습, 그리고 패러다임을 가지고 매사를 검토하는 기준틀과 표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생의 각 부분을 구성하는 오늘의 행동과 내일의 행동, 내주의 행동과 내달의 행동 등을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체적 가치관에 따라 검토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는 목적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출발한다는 것이고, 이렇게 될 때 우리의 현재 위치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올바른 지 아닌 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생목표를 가질 때만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오늘 복음과 독서는 모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말씀을 적고 있다.
1독서에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2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그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시고 하늘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 편에 앉히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이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라고 적고있다.
여기에 나오는 말 중 공통된 말인 「하늘」이라는 말과 우리가 매주 미사 중에 고백하는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란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승천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 옛날부터 '하늘'이란 신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하늘」이라는 말은 신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한 예는 세계 모든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어서 성서 도처에 이러한 사고 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고 사람이 사는 곳임에 비해 하늘은 하느님이 계신 곳이다. 하느님과 천사들은 인간을 방문하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올수 있으나, 인간이 오르기에는 불가능한 장소로 여겨졌다. 때문에 하늘이 상징하는 것은 인간의 세계와 구별되는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요, 하느님이 계시기에 인간의 모든 꿈과 염원이 이루어지는 나라, 완전한 행복이 이루어지는 유토피아요 천국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리고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란 말. 오른편이란 말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뜻이고, 둘째로 오른편은 영예와 권리가 따르는 가장 높은 자리를 상징하고 있고 더 나아가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란 말은 하느님의 통치권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승천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이 계신 하늘, 우리의 모든 꿈과 염원이 이루어지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계시고 모든 영예와 영광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사실은 무엇을 우리에게 주는가! 아마도 승천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의미는 목표로써의 의미이리라.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야할 곳, 우리의 완전한 행복이 이루어지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승천의 또 다른 의미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요 전설적인 이야기도 아닌 신앙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셨기에 우리도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행복이 이루어지는 하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또 다른 절대 희망을 보여줌이 승천의 의미이리라.
우리가 종종 부활과 승천을 동일한 신비의 양 측면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부활이 영생에 대한 절대 희망이라면, 승천은 영원한 행복에 대한 절대 희망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교회가 승천 축일을 성대하게 경축하면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교훈도 이것이리라!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야할 곳이 어디인가? 그리고 인간의 완전한 행복이 이루어지는 곳이 어디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우리의 마지막 목적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 삶을 반성함이 어쩌면 참 승천의 신비를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