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다르면 세상도 달라집니다』어느 대기업의 광고 문구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은 잠재된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능력, 즉 마음과 육체와 영혼의 잠재력을 어떻게 발견하고 깨우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잠재된 능력은 「마음과 생각」을 통해 그려 낼 수 있는데, 이렇게 잠재된 능력을 그려낼 수만 있다면 내면에 잠들어 있는 힘은 저절로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분은 「마음과 생각」이 잠재력을 발견하는 키로 보면서 「마음의 수련」과 더불어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패러다임」을 강조하고 있고 인생의 한계란 어쩌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성령강림 사건을 루가는 1 독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순절이 되어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루가는 성령강림 사건을 먼저 오순절과 연결시킨다. 오순절은 해방절 다음 50일째의 축제로 첫 수확한 보리와 밀을 하느님께 드리는 봄 수확 감사제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념하는 축제로 구약의 하느님 백성의 출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날이다. 때문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이제 성령으로 인하여 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대신하는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라고 증언하는데 이 뜻은 복음은 선민과 만민 모두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리스도교는 모든 인종과 온갖 언어를 차별하지 않는 범 세계적인 종교라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어떻든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구원의 역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이날 처음으로 성령이 활동을 시작하셨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미 성령은 세상 창조 때부터 활동하고 계셨고, 예수님의 잉태 시에도 이미 역사하고 계셨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도 『숨을 내 쉬시며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 대목도 주석가들은 이 부분과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을 일치시키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고, 본질적으로 성령의 선물에 대한 다양한 전승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사도들이 체험한 성령 강림사건의 의미는 성령의 재 체험과 재발견의 의미가 더 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이미 그들과 함께 활동하였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령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새로운 눈뜸」에 대한 극적 표현이 성령강림의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 세미나의 의미도 비슷할 것이다. 성령세미나의 목적도 우리가 성령을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례 때 이미 받은 성령, 우리와 함께 하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령을 재발견하고 재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 성령세미나의 의미이리라!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을 재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먼저 기도를 들고 있다. 우리가 9일기도의 유래를 성령 강림을 준비하기 위해 성모님과 사도들이 한 9일 동안의 기도에서 유래를 찾고 있듯이 기도는 신앙생활의 기본일 뿐 아니라 성령을 체험 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성령을 체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는 「비움과 의탁」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신의 아집과 편견, 편애적인 자애심을 버리고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밖을 보면 우리가 꿈을 꾸게 되지만 안을 보면 깨어나게 되리라』는 말처럼 솔직한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모든 것을 수용할 태세를 가지고 있는 빈 그릇처럼 성령을 받기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비울 수 있을 때 성령은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 마치 예수님을 체험했던 사도들이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임하시어 그들 안에서 역사 하도록 자신들을 온전히 성령께 의탁하였던 그 자세를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2000년 전의 성령 강림 사건은 모양과 방법은 다를지언정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 재현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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