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시편 90:10)
시편의 한 구절은 삶의 유한성과 생명의 소멸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만 수원교구 노인대학연합회(지도=한상오 신부)의 실버벨 밴드에서는 그러한 우울함을 찾아볼 수 없다. 밴드명에서도 알 수 있듯 실버벨 밴드의 구성원 모두는 노인이다. 사회에서 보통 「몇 세 이하」로 나이를 제한하는데 비해 실버벨 밴드의 연령규정은 「반드시 60세 이상이어야 할 것」. 나이가 많아야 참가가 가능하고 대접받을 수 있다.
현재 실버벨 밴드를 구성하는 악기는 키보드, 섹스폰, 플롯, 아코디언. 어딘가 모자란 듯해 보이는 구성이지만 네 명의 할아버지가 이루어내는 화음만큼은 6월의 젊은 하늘을 꽉 채우고도 남는다.
밴드의 단장이자 키보드를 담당하는 진원율(살레시오·수원교구산본본당·78)씨는 전 마산 KBS 교향악단 단장이었던 「프로」다. 마냥 음악이 좋아 독학으로 악보 보는 법과 악기 연주를 익히며 음악과 함께 한 인생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 나이만큼 손가락이 점점 굳어져 바쁜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때도 많지만 매번 연습시간이 기다려지는 건 왕년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오르게 해서만은 아니다.
섹스폰의 김재식(안드레아·수원교구야탑동 성마르코본당·63)씨와 플룻의 홍광덕(바르나바·수원교 기안리본당·70)씨는 만기제대한 군악대 출신이다. 군악대를 지휘하던 홍씨의 전공 악기는 원래 클라리넷이지만 치아가 상하면서 입구부분인 피스를 무는 것이 어려워져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것이 플룻이다. 독학으로 아코디언을 배운 장영찬(마르코·수원교구 양지본당·67)씨와 마찬가지로 본당 성가대의 지휘와 지도를 맡고 있다.
『예전에는 한시간 이상을 불어도 거뜬했는데 지금 봐. 20분만 지나도 힘들어서 헉헉 대는 걸…』
잠시 쉬는 시간에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플룻 할아버지가 말한다. 그러자 키보드 할아버지 대답하는 말씀.
『그래도 얼마나 좋아. 다시 악기 잡으면서 머리가 맑아지잖아. 늘 즐겁고 생기있고 젊어진 것 같고』
실버벨 밴드는 오는 6월 1일 오전10시 수원 조원동성당(031-244-7766)에서 봉헌된 「노인 미사」에서 조촐한 창단 공연을 가졌다.
해설, 복사, 독서, 반주 등 전례를 노인들이 직접 담당한 이 미사는 교구 노인대학연합회가 노인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앞으로 매월 첫째주 금요일마다 봉헌될 예정.
노인밴드는 노인미사의 반주 뿐 아니라 각 본당 노인대학 순회공연, 정기공연 또한 계획하고 있으며 구성원도 더 충원할 생각이다.
『노인들의 인생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고 노년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노년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의 마지막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버벨 밴드를 기획하고 꾸린 노인대학연합회 송영오 신부(수원교구 가정상담센터 소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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