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학생 시절에는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을 비롯해 라틴어, 철학 등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신부가 된 후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순천(順天)」의 삶을 살며 「순천학」을 공부해오고 있는 셈이다.
이 「순천」의 삶을 살아오며 나는 사람 가운데, 그리고 대자연 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때로는 삶 속에서 아픔을 느끼기도 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먹고 살 한두가지씩의 소질을 주셨다. 따라서 이 소질을 어떻게 잘 살려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느냐, 즉 하늘을 따르느냐(順天) 거스르느냐(逆天)가 천국을 가느냐 못가느냐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직업의 귀천이 너무도 명확한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저마다의 소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하느님이 보시기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사회가 이런 개인들에게 내재된 하느님의 선물을 개발하도록 돕고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사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땅 속을 흐르는 수맥을 찾아내는 소질을 선물받아 이를 통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질을 올바로 쓰기 위해 한여름 뙤약볕 아래 벌판을 몇 시간씩 헤매며 수맥을 찾기도 하고 꼭두새벽에 나가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까지 해안가를 오가며 샘을 찾아 주길 수없이 했다.
또 식수난에 허덕이는 전방의 군인들을 위해 전방의 수맥을 찾아 나선 때도 적지 않았다. 전방을 돌아다니다 보니 지금껏 헬리콥터를 탄 것만도 800회를 넘을 정도다. 민간인 치고 나만큼 군용 헬기를 많이 타본 사람이 있을까. 최전방을 향할 때면 북녘 땅에 있는 고향이 가까워 온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곤 했다. 그러면서 한 민족이면서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민족의 운명에 한없는 슬픔을 느껴야 했다.
누구 말대로 물이 나올 구석이라곤 보이지 않는 고지대 부대를 방문해 암석으로 뒤덮인 산야를 누빌 때면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내 가슴에도 같은 무게로 부딪쳐 옴을 느낄 때가 많았다. 제대로 씻지 못해 새까만 얼굴을 하고 손을 맞이하는 장병들을 보면 나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측은한 마음이 일 것이다.
그러나 바위를 치면 물이 나오는 역사는 모세만의 기적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느님은 수많은 수맥을 땅 속에 감춰 두시고 지팡이를 들어 치게 하시어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장병들이 의혹의 눈초리로 내가 잡아준 물자리를 쳐다볼 때면 나는 보고서야 예수님을 믿은 토마스 사도가 떠올랐다. 그러나 내가 짚어준 땅을 일러준 깊이만큼 파 들어간 후 펑펑 쏟아지는 물을 발견하고는 얼싸안고 기뻐하는 그들을 볼 때면 내가 한 조그만 일이 어떤 의미인 지 새삼 돌아보고 스스로 숙연해질 때가 많았다. 내가 물자리를 찾아준 부대에서 제대한 이가 찾아와 감사의 뜻을 전하거나 고맙다는 편지를 전해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토록 놀라우신 능력을 인간의 몸을 빌어 쓰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며 기쁨에 젖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렇게 전방의 산정에서 찾은 수백 곳에 이르는 물자리를 비롯해 지금껏 수맥을 찾아준 데가 1000여 곳이 넘는다. 성당의 수맥을 잡아준 곳만도 줄잡아 100여 곳이 넘을 것이다. 이 가운데는 지난 1982년 현지를 답사해 잡아준 독립기념관터를 비롯해 가회동 주임시절 찾아준 강릉의 경월소주, 장성의 보해소주, 도자기를 굽는 향남사 등의 물자리가 기억에 남는 곳이다. 이렇게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물자리를 봐주었지만 지금껏 한번도 내가 짚은 곳에서 물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본당 사목을 통해 하느님을 전하고 잃어버린 양을 하느님의 품으로 이끄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 경우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잘 살려 그 재능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주위의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면 그 또한 태어난 보람이 아닌가. 나는 내 재능을 한번도 내 자신을 위해 써본 적이 없다. 오로지 이를 통해 하느님을 전하고 하느님을 몰랐던 이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전교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주위의 예상보다 일찍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도 마음이 닿는 대로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사람들의 부름을 받아 한주일에 네닷새는 전국을 다니며 수맥을 찾아주거나 묏자리를 봐주며 은퇴 전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활동에 대한 고마움을 돈으로 표시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나는 이를 사사로이 쓰지 않았다. 소중하게 모았다가 성전 건립 기금이 부족한 본당이나 어려움에 부닥친 성지, 북한의 형제들,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하느님이 주신 재능으로 얻은 것이니 하느님을 위해 돌릴 밖에. 하느님 앞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날까지 힘이 남아 있는 한 영과 육에 생명수를 찾아주는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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