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아내는 「소화데레사」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고 우리는 지하실 방으로 이사를 했다. 햇빛이 들어오질 않아 낮에도 전등을 켜야만 했고 얼마나 습기가 많은지 장농을 열면 이부자리가 축축했다.
우리 부부는 지하실 방 2개를 얻었는데 내 동생 바오로가 나와 같이 살기를 원해 들어와 방 하나를 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름에도 옷한번 편하게 입지 못하고 생활하면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았던 내 아내에게 고마울 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부부를 그곳에서 함께 훈련시키신 것 같다.
반찬은 거의 두가지나 세가지이고 내가 좋아하는 고기도 거의 사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우리의 삶은 오직 주만 바라보는, 즉 하늘만 바라보는 삶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간절했던 것 같다. 특히 내 자신의 부족함,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합당한 자로 만드시기 위해 그 고생을 허락하셨으리라.
어릴 때부터 부족함이 없이 살았기에 이제는 「풍부할 때나 궁핍할 때 늘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노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다. 또한 그 궁핍으로 인해 나는 피곤하다고 게으르지 않고 봉사하게 되는 점도 있었거니와 없는 이의 고통도 더 잘 알 수 있었고 또 남들에게서 받는 작은 도움이라도 사랑으로 겸손히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을 더 배우게 한 것 같다.
이사오기 직전에 첫째 딸을 낳았기 때문에 우리 아기는 그 습기 많은 곳에서 혹시 병이라도 날까싶어 자주 안수도 해주고 건강기도를 해주었다.
한번은 내가 해물탕이 몹시 먹고 싶었으나 사먹을 돈이 없어 아내에게 갑자기 해물탕이 먹고 싶다고(소용없는 말이지만) 이야기 하였는데 우리가 그 다음날 부산으로 신부님의 초청을 받아 가기로 되어있었다. 아직도 해물탕 생각이 간절한 상태에서 마중 나오신 신부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으셨다. 나는 아무 것이나 다 잘 먹는다고 말씀드리고는 속으로만 '해물탕이요'하고 있었다. 신부님이 '그래도 뭐 먹고 싶은교?'하고 다시 한번 물으실 때도 역시 나는 차마 '해물탕이요'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다 잘 먹습니다'라고만 하였다.
결국 사양하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신부님께서 10분 이상 차를 달려 '이곳이 부산에서 아주 유명하다'며 내리게 되었느데 우리 앞의 간판은 바로 「원조 해물탕」이라 적혀있었다. 이토록 섬세하게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내 아내의 경우는, 원래 과일을 좋아하는데 아기 가졌을 때는 더욱 먹고 싶었던가 보다. 며칠을, 그동안 잘 먹고 살았으니 참아보자고 하며 참았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아버지, 저 사과하고 수박을 오늘 꼭 먹고 싶으니 주셔야겠어요'하고 속으로 기도하면 그날 시동생이나 어떤 봉사자가 반드시 사와서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다시 전세를 이층으로 얻어가게 되었다. 어머니와 나는 2년이상 계약을 하려 했으나 아내는 1년간 하지 그러냐고 하며 하느님이 곧 집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너무 기뻐 「아멘」하고 순간 대답하였으나 속으로는 '이렇게 딱 맞추어 주시는데 집이 한두푼도 아니고 어느 세월에 집이 생겨 이사를 가겠는가?'하였다.
나는 그 이층집에서 햇빛나는 창가에 앉아 처음으로 햇빛에 대한 감사를 하였다.
그러다가 아내에게 어떻게 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곧 집을 주신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구약의 말라기서 3장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바쳤으니 어린 아들 딸이 살 집은 당연히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집문제나 먹고 사는 문제가 부모의 걱정할 몫이지 자녀의 몫이 아니듯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아버지 것인 십일조를 안 떼어먹었으니 살 집도 당연히 주셔야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그 집에서 둘째 딸을 낳고 정말 8개월만 살고 우리의 집이 생겨 평소 아내가 말하던 「적당하고 깨끗한」 22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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