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소금 인형이 산과 계곡을 넘는 기나긴 여행 끝에 해변에 도착했다. 자신 앞에 펼쳐진 바다는 너무나도 크고 매력적이었지만 인형은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형은 호기심에 가득 차서 바다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누구냐 ?』
바다가 대답했다.
『나는 바다야』
그러자 인형이 다시 말했다.
『나는 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네가 누군지, 네가 무엇인지 말해 주렴!』
그러자 다시 바다가 대답했다.
『네가 정말로 나를 알고 싶다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만져 봐』
소금 인형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겁먹은 표정으로 한쪽 발을 물 속에 담궈 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인형은 자신의 발이 자신의 몸에 붙어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발이 바닷물에 녹아 버린 것이다. 인형은 놀라고 겁이 나서 소리쳤다.
『너, 내 발을 어떻게 한 거니? 아무래도 내가 너에게 속은 것 같아』바다가 대답했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 네가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 자신의 무엇인가를 나에게 줄 수 있어야 해. 만일 네가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너는 나에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그러자 소금 인형은 점점 더 깊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이상한 기분도 점점 더 강해졌지만, 바다에 대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인형은 완전히 바닷물에 녹아 버리고 말았다.
인형이 외쳤다. 『이제 난, 바다가 무엇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모든 것은 아니야!』소금 인형이라는 우화의 내용이다.
이 우화는 우리가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과 하느님이라는 분은 소금인형의 마지막 대화에서 나오듯, 우리의 지성으로 온전히 파악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온몸으로 체험하고, 그분께 스며들 때 알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우화이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교회는 부활 시기를 지내면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의 신비를 묵상한 후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삼위일체 신비를 우리에게 묵상하게 한다.
삼위일체. 오늘 미사 감사송에 나와 있듯,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느님이시며 한 주님이시나, 위로서 하나가 아니시고 삼위일체이신 본체로서 하나라는 것,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서 존재하는데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이고 하나의 하느님 본질이며 하나의 하느님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여기에 사용된 개념들의 교의적 정의는 내려진 바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렵지만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대강의 이해를 위해서는 위격 개념과 본체와 본질, 본성이라는 말에 대한 대강의 이해가 필요하다.
위격이라는 말은 개별적 존재라는 의미가 강한 말이다. 원래 이 말은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하여,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인격 혹은 성격이라는 말로도 사용되는 개념을 신학에서 쓰고 있는 말이다. 이 위격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타 존재와 독립하여 그 자체로 존속하는 완전한 실체"라고.
그리고 본성과 본질 실체라는 말은 학자들에 의해서 약간씩 다르게 해석되지만 이 말들이 가지는 하나의 공통점은 『각가지 변화해 가는 사물의 근저에 있는 지속적이고 불변하는 것. 바탕을 이루는 것, 근본에 있는 존재를 가르키는 말』이다.
때문에 삼위일체의 교리는 하느님은 외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이라는 세분으로 구별되지만 내적 본체로서는 같은 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초대교회가 성부, 성자, 성령을 체험한 후 나온 신학적 반성 때문일 것이다. 분명 외적으로 보기에는 세분은 구별되고 다른 분임이 분명하지만 이분들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본성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이를 부족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삼위일체 신비였으리라 !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위일체는 절대 신비로서 이성에 의해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신비가 아니라 앞의 우화의 교훈처럼 우리의 체험과 그분께 스며들어가는 삶 안에서 이해 될 수 있는 신비라는 점이리라 !삼위일체 축일! 참으로 기묘한 방법으로 인간의 구원역사를 이끌어 오신 사랑이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아침기도에 나오듯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아가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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