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의심하는 환우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성당에 나오지 않는 이교도 중에는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짠물에 길들여졌던 우리로서는 깊은 산중에서 솟아오르는 약수를 마시는 듯한 상쾌함으로 감격하며 그 물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되자 천주의 성은을 도대체 믿지 않는 이교도들의 마음까지도 변화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1979년 초 가톨릭신문에 난 나에 관한 기사를 보고 청해온 소록도 환우들의 부탁으로 소록도를 방문해 20여 곳에 물자리를 찾아주고 나서 그 곳 신자들이 전해온 절절한 감사의 뜻은 오히려 나를 감동케 해 나는 그 길로 공장용 대용량 세탁기 두 대를 사 보낸 적이 있다. 물을 만나자 손가락 없는 손으로 환희의 기도를 올리는 나환자들을 보며 덩달아 감동했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그 곳에서 사목을 하고 있던 이들을 보며 실로 다미안 성인의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던가를 떠올리며 새로운 힘을 얻어 돌아온 일도 늘 용기를 주는 추억이다.
지나간 이같은 시간들을 되짚어 보면 그 시간들이란 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고 내 몸을 빌려 사람들에게 아버지 사랑을 나눠주신 기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된다. 물을 찾아내는 재능으로 인해 「수맥 박사」로 원치 않은 유명세를 치르며 숱한 사람들의 삶 속에 찾아 들어가 어떤 경우에는 뉴스나 얘깃거리로, 어떤 때는 하느님나라의 씨앗을 뿌리는 도구로 쓰여졌던 것 같다.
나는 반세기 사제의 길을 걸어오며 「바라는 만큼 노력하라」는 신학교 시절부터의 좌우명을 지키려 노력해왔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어제는 강원도 산간벽지로, 오늘은 제주도로, 내일은 땅끝 마을로 인심이 부르는 데로 발길을 옮기는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부르는 이가 타종교인이더라도 상관치 않고 그들을 찾아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하느님을 알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려 죽음의 땅도 마다 않고 돌아다니신 예수님의 길을 떠올리며….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을 두고 무속시(巫俗視)하는 이들을 볼 때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인간이 워낙 자신들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일을 깔보려 하는 얄팍한 존재이기는 하나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면 될 일을 그런 조그만 노력도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풍수를 전하는 이들 가운데 짧은 지식을 이용해 혹세무민하고 사리사욕만 챙기는 이들이 있어 이런 인식이 퍼진 것 같다. 그렇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사례에서도 보듯 당대의 지식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 진리가 아닌 것이 아니다.
숱한 경험, 그 가운데서 체험하는 몸이 떨리는 감동의 삶,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은 사제의 길을 걸어오면서 늘 새롭게 다가오는 깨달음은 「사목자는 봉사자이지 섬김을 받는 위치가 아니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가끔 사제의 길을 혼동하는 이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의 경우는 특히 「쇠귀에 경 읽기」여서 안타까움이 일 때가 많다. 교회는 우리 모두의 공동체이지 어느 누구의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일 내 일」을 따져 자신이 편할 대로 하느님의 일을 재단하는 모습을 보면 순교의 길을 걸어간 신앙선조들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이런 생각에서 나는 요즘 들어 계속 늘어나는 신설 본당에는 사목의 효율성을 고려해 오히려 본당 사목의 경험이 풍부한 사제가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만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지옥 갈 영혼 하나를 천국으로 이끄는 일이 더 큰 일이다」
내가 걸어온 지난 삶은 이런 마음이 바탕을 이룬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마음을 후진들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올초 가톨릭대학교에 3억원을 기탁해 「혜화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사제의 길을 걸어갈 부제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숨결이 살아있는 성지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하느님을 좀더 온전히 알고 믿음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하자는 뜻에서였다.
이 글을 맺으며 나는 모든 신자들에게 「새마음운동」을 펼쳐 나갈 것을 권하고 싶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이기심을 버리는 일이다. 「개인주의」라는 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남으로 인해 불편을 입지 않겠다는 속좁은 이기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은 필시 살아오며 나누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사람이다. 다음으로 허세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인간이 부리는 허세의 단적인 예가 큰 무덤이다. 한 몸 누일 땅이라면 한평도 족할 텐데 임금같이 묘를 꾸미는 이들을 보면 죽어서까지 주위를 생각지 못하는 마음에 서글픔마저 든다. 마지막으로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걸핏하면 싸우고 죽이고 하는 일들은 모두 인내심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지금껏 살아오며 잠시라도 하느님을 떠났으면 아마 나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날까지 사제로 살게 해주신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이 벅찬 느낌으로 와 닿는다.
「신앙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를 닮아 가는 것」이라는 말이 근래 들어 더욱 실감이 난다. 매일의 삶 속에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며 나는 하루하루 당신이 보내시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나갈 것이다.
임응승 신부님의 이야기가 이번호로 끝나고 다음은 대전교구 유봉운 신부님의 삶과 신앙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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