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인생의 어떤 시기로 창조됐을까. 갓난아이? 청소년? 아니면 노인? 태초에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신 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을 정복하라」고 하신 것으로 기록된 창세기를 떠올려 본다면 그들은 많은 그림과 영화에서 그려진 모습과 같이 결혼적령기인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타당할 듯 싶다. 인류의 역사는 그들의 혼인관계에서 비롯됐고 모든 생명체,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가 혼인관계에 들어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성서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은 접어두고 가정과 생명의 시작이 혼인에 있음을 주지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터져 나온 각종 사건과 통계자료를 미루어 볼 때 가정이 점차 무너지는 상황에서 가정의 시초인 혼인에 대한 가치관과 문화 또한 교회의 가르침과는 멀어진 채 급변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000년 혼인·이혼 통계결과」에 따르면 혼인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지난해 혼인율은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같은독신 선호 경향은 가정생활이 상대적으로 더 큰 굴레가 되는 여성의 경우 특히 두드러져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한국의 사회지표」에서는 20대 여성 32.7%가 「결혼은 해도 좋고 안해도 그만」이라고 대답했다. 젊은 여성들에게 더 이상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일 뿐이다.
결혼에 대한 기피현상으로 혼인율이 감소하는 데 반해 같은 통계에 따르면 이혼율은 최근 3~4년 사이에 급증해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12만쌍으로 99년보다 2000쌍이 늘어났으며 지난 70년에 비하면 정확히 10배로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혼 증가 현상 또한 변화하는 결혼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로 대변되던 결혼의 영속성은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명문대 동거사이트」는 젊은이들의 비뚤어진 성의식과 결혼관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사례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명문대 남학생에게만 계약 동거 자격을 부여해 회원을 모집하는 이 사이트에는 단 열흘만에 647명의 회원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99년말부터 건전한 동거문화 창달을 표방하면서 등장한 인터넷 동거 사이트는 이후 급속도로 번지면서 현재 수십여개의 동거 사이트가 횡행하고 있다.
동거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점차 확산되어 가는 추세여서 한 인터넷 통신회사가 지난해 1만3천887명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자의 87%가 「혼전동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동거커플에 대해서도 「자유롭다」(31.7%) 「특별하지 않다」(31.4%) 「합리적이다」(21.6%) 등 긍정적인 시각이 85%에 달했다.
달라진 결혼세태를 얘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조건에 맞는 상대를 골라주는 결혼정보회사다. 현재 결혼정보회사는 100여개, 결혼상담소는 1천30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결혼정보회사의 경우 미혼, 재혼, 만혼클럽 등 다양한 연령층과 전문직, 명문가 등 계층으로 등급을 나누어 각 등급별로 만남을 주선해 준다. 신청서에는 호적등본, 졸업증명서, 재직증명서 등 개인신상정보는 물론 취미, 성격, 기호, 직장의 근무연수, 연봉, 회사 설립연도, 상장여부, 직원수, 본인재산, 가족재산 등의 조건을 공개해야 한다. '신데렐라는 운좋게 왕자와 결혼은 했지만 성장환경에 따른 성격차와 집안끼리의 갈등 때문에 곧 이혼했을 것'이라는 이들에게 '결혼과 행복이 물질과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반론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결혼관과 결혼문화가 달라졌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결혼의 풍속사는 사회제도의 영향을 받아 다양하게 변화해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일부일처제로 유지되고 있는 가정의 존립 자체를 문제시 삼는 사회 분위기는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결혼관이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교회의 명확한 가르침과 사목적 지원은 많은 이들에게 적절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혼인성사」에서 대표되듯 교회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로 맺어지는 일을 더 이상 「인간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 「거룩한 일」(성사)라고 본다. '하느님은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일치의 신비 안에 살고 계시며 인류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시고 계속 존재케 하심으로써,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사랑과 일치의 소명, 능력, 책임을 부여하셨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고 「가정공동체」 11항).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간의 기본 소명이며 혼인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이 친히 의도하신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볼 때 혼인제도는 이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 주장하듯 사회와 권위에 의한 부당한 간섭이나 외부에서 부과한 형식이 아니다. '이는 특유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공인된 부부애의 계약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인간의 자유는 이 충실성으로 말미암아 제한되기보다는 오히려 주관주의나 상대주의에서 보호될 수 있다'(가정공동체 11항).
이러한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계약결혼이나 동거, 사랑 없이 물질적 조건만 맞춘 채 이루어지는 결혼 등은 혼인제도를 부정하고 사랑의 소명을 저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올바르지 않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주장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어떠한가. 교회는 사랑의 소명을 가진 인간이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혼인과 독신 두 가지를 다 인정한다. '둘 중의 어느 것이나 적절한 형태를 유지하는 한 인간의 가장 심오한 진리의 실현이고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실현'이다(가정공동체 11항).
하지만 이 때의 독신은 편의주의적 발상에서가 아닌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일 때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편 '본의와는 무관한 이유로 혼인하지 못하였으나 그 상황을 봉사의 정신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는 독신생활이 빛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가정공동체 16항).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도적 권고로 펴낸 「가정공동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발표된 「가정」 관련 주요 문서로 이는 교회가 가정의 전단계에서 사목적으로 배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중 혼인준비, 혼인식, 혼인성사와 냉담자의 복음화, 혼인후의 사목적 배려 등 가정을 이루는 첫 걸음인 혼인과 관련한 사목의 중요성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다.
'오늘날 가정생활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부정적 현상은 새로운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가치의 올바른 서열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행동의 확고한 기준이 없어서 새로운 문제를 대면하고 처리하는 방법을 모르는데서 발생합니다…교회는 많은 젊은이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가능한 한 제거하기 위하여, 나아가서 성공적 혼인의 시작과 성숙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하여 더욱 적합하고 집중적인 혼인 준비 과정을 촉진해야 합니다'(가정공동체 66항).
가정제도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으며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을 형성하는 혼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가르치고 아울러 가정생활의 여러 단계에서 점진적으로 함께 하는 교회의 사목적 노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 혼인교육 실태와 과제
형식적 교육 탈피 적극적 참여 유도
전문봉사자 양성 등 지속적 투자 필요
『혼인교육은 혼인성사를 하기 위한 절차상의 의무사항으로만 생각했지 별 도움이 될까 싶었죠.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혼인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고 배우자에 대한 더 큰 사랑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남들처럼 「그냥 잘 살면 되지」라고만 생각했던 걸요』
지난해 12월 결혼한 한 여성신자는 유아세례를 받고 오랜기간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막상 혼인성사와 관련한 생각은 전무했다고 밝히며 혼인교육이 예비부부들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부의 진실된 사랑이 하느님이 주신 소명임을 알게 되면서 서로의 사랑이 더욱 확고하고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현재 각 교구에서 실시하는 혼인교육은 교구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주말을 이용한 4시간 정도의 과정이 가장 많은 형태다. 강의는 혼인성사의 의미, 혼인법, 자연가족계획법, 가정생활 등 핵심적인 내용으로 진행되나 짧은 교육시간에 이를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예전에는 일주일 단위로 실시해 오던 것을 수강율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대폭 시간을 줄였기 때문. 99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혼인성사를 받은 부부들의 혼인강좌 이수율은 64%선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혼인교육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전문 봉사자 양성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가정사목 관계자들은 교회가 전체적인 가정사목의 차원에서 혼인교육을 바라보고 이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는 현재 각 교구의 혼인강좌 교재와 프로그램 실시 현황을 파악해 교육 내용을 통일하고 심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전 교회차원에서 통일된 혼인강좌 교재가 조만간 발간될 예정이다.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담당 노연호 신부는 『자신과 배우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신앙에 근거하지 않은 가정생활은 운전면허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부모님들은 혼수준비에 앞서 혼인교육을 받도록 권장하는 것이 자녀들이 결혼생활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이끄는 가장 큰 결혼선물일 것』이라며 혼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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