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형제회의 「작음」(minoritas)과 「형제애」(fraternitas)의 영성은 가난과 겸손을 실천하고 사랑과 순종을 형제들에게 베푸는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형제들은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길 자청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일치를 이루면서 복음과 형제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작은 형제회의 사도직 활동은 크게 사회복지, 국내외 선교활동을 포함한 복음화, 교육, 특수사도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회복지활동은 나환우들을 위한 시설인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성심원은 1959년 이탈리아 작은형제회 콘스탄시오 쥬뽀니 신부가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나환우들을 치료하고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것. 60여명의 환우들이 쥬뽀니 신부와 함께 공동체를 이룬 성심원은 오스트리아와 교황청의 원조로 병원과 성당을 짓고 자녀들을 위한 보육소, 초등학교, 국수공장과 신협 등 부대시설을 갖추면서 하나의 부락을 형성, 자체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작은형제회는 78년부터 행려자들을 위한 빈민식당인 서울 용산의 「베들레헴의 집」을 운영해 왔으며, 88년부터는 서울 제기동에서도 빈민식당인 「프란치스꼬의 집」을 운영해오고 있다.
노인복지에도 힘을 기울여온 작은형제회는 92년 진주 하대동에 노인요양원을 설립했고 98년 전남 장성에 「프란치스꼬의 집」을 신축했다. 특히 전남 장성의 「프란치스꼬의 집」은 노인종합복지센터로서 요양시설과 재가시설을 지역사회에 개방해 지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작은형제회는 이같은 사회복지활동과 함께 복음화를 실천하기 위해 95년 순회공동체를 설립,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공동체를 형성해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특히 교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농어촌이나 공소를 찾아다녔던 이들은 보길도와 동강지역에 순회공동체를 형성해 프란치스칸 삶을 증거하고 노화된 공소를 활성화시켜왔다.
복음화를 위한 이들의 노력은 이밖에도 인천, 수원, 대전 등지에서의 본당선교와 이스라엘과 러시아,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 해외선교를 통해서도 실천되고 있다.
또 작은형제회는 혼인사목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운영 등의 특수사도직과 수도자들의 교육을 위한 수도자 신학원 및 프란치스칸 영성학교, 프란치스칸 사상 연구소 운영 등의 교육사도직을 수행하면서 프란치스칸의 영성을 전파하고 있다.
프란치스칸 영성을 한국교회에 널리 알리는 데에는 이같은 수도회의 다양한 활동과 아울러 많은 재속회원들의 기도와 봉사를 빼놓을 수 없다.
8백년 동안 수천만에 이른 프란치스칸 가족은 프란치스코 남자수도회(1회)와 관상수녀회인 글라라회(2회),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3회와 재속프란치스코회(3회)로 구성돼 있으며, 한국의 재속프란치스코회는 우리 교회 안에 수도회보다 먼저 존재했다.
재속프란치스코회는 1978년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새 회칙을 인가받으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전세계 모든 평신도와 사제들에게 개방돼 있다.
제3회가 배출한 성인으로는 성 루도비꼬, 성 토마스 모어, 성 요한 비안네, 성녀 엘리사벳 등 60여명이 있으며, 그레고리오 9세부터 바오로 6세까지 20여명의 교황과 단테, 미켈란젤로, 라파엘,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 창설자 프레데릭 오자남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각계 각층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 살았다.
한국의 재속회원은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 가운데 이미 있었다.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로 순교한 이들 가운데 3명의 조선인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제3회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비롯되며 국내에서 활동이 시작된 것은 미국서 재속회원으로 서약했던 장면, 장발 형제의 활동에 의해서다. 국내에 돌아와 서울 혜화동 신자들을 중심으로 서울 형제회를 구성했으며 교구 안에서도 중추적인 활동을 해왔다.
이와 함께 오기선 (1907∼1900) 신부와 6·25 순교자인 이광재(1909∼1950) 신부가 한국 사제로는 처음으로 재속 3회에 입회해 프란치스칸을 증거해 왔다. 1939년 서울 형제회가 정규형제회로 발
족됐고 이어 대전 형제회가 설립되면서 재속회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1960년대 전후를 계기로 전국에서 많은 재속 형제회가 창설됐으며 62년에는 전국의 형제회를 총괄하는 한국연합회가 설립됐다.
작은형제회와 함께 성장해온 재속회는 73년 형제들의 물질적인 보조와 상호간 봉사를 원활히 하기 위해 「형제신용협동조합」을 창설했고, 74년에는 서울 청장년 형제회를 발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지속해왔다.
초대 장상인 아뽈리나리스 신부부터 이종한, 유수일 신부, 그리고 현재 관구장인 김찬선 신부에 이르기까지 118명(99년 현재)의 작은 형제들은 수많은 한국의 재속 회원들과 함께 스승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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