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인생의 반 고비를 훌쩍 넘기고 이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부지런히 앞을 보면서 살아온 내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난 삶을 되볼아 본다. 과거는 기억 저편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다.
그 옛날 현실 속에서 희로애락으로 점철되었던 절절한 사연들이 지금은 그저 얌전한 여인과 다를 바 없다. 아니, 그것들은 마치 초록색 옷을 걸친 산야인 양 정겹다. 과거는 이렇게 아름답게 채색되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찾아 떠난다. 무수한 고통과 좌절이 기쁨과 보람만큼이나 많았던 인생의 뒤안길로 떠난다.
나의 마음은 가볍게 설렌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그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보여 주신 새 생명의 과정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아! 이 부족하고 허물 많은 자를 당신 영광의 도구로 택하신 하느님 은총을 무엇으로 보답한단 말인가!
나는 1943년 3월 10일 전남 목포 산정동에서 태어났다. 갓난아기 시절은 내 인생의 방향을 벌써 예고한 것이었다.
첫째 아들을 어린 나이에 병으로 잃은 부모님에게 나의 출생은 남다른 기쁨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내 얼굴이 밉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를 보는 사람마다 아기가 잘생겼다면서 서로 안아 보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 손을 너무 탔음일까. 나는 세상에 태어난 지 일년 만인 돌날에 발병했다. 이날 시골에 다년온 뒤 오른쪽 다리를 바닥에 딛지 못한 채 울어대었고, 이상하게 생각한 부모님이 병원이나 한의원을 전전하면서 고치려 하였으나 병명조차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많은 시일이 흐르면서 오른쪽 엉덩이가 깊게 화농되었고, 대퇴부 관절이 탈골되었음을 안 것은 나중에 수술을 받은 다음이었다. 오늘날 같으면 어렵지 않게 고쳤을 터이지만, 그 당시는 일제 말기여서 의학이 낙후했던 것이다.
네 살이 되어서야 농이 그친 나는, 그러나 다리를 절었다.
부모님은 아들이 병신이 된 데 적잖이 상심했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훌륭하게 키우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적령기가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어머님은 나를 업고 학교에 갔다.
행여라도 아들의 동심이 멍들지 않을 까 해서 였다. 그렇다고 악동들이 눈을 감아 줄 것인가.
『저앤 열등아야, 열등아!』 아침저녁으로 등하교 길에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듣기 싫었다. 그래서 며칠 만에 『엄마, 나 걸어 다닐래』하였고, 어머님은 아들의 마음을 헤아린 듯 손을 잡고 다녔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혼자 다니고 싶어 어머님의 동행을 거절했다.
그러자 악동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 짤레야! 짤레야!』하고 놀려댔다. 나는 처음에 「짤레」라는 말뜻도 몰랐으나 이것이 절룸거리는 나를 빗대어 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이 아이들은 나의 앞뒤에서 내가 걷는 모양을 흉내내며 악머구리들처럼 떠들어대어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
어느 날 하교 길에서도 그런 일을 당하고 집으로 뛰어들기 무섭게 울음을 떠뜨리며 어머님에게 일러바쳤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님은 새파랗게 질려 『어떤 놈들이 그러더냐?』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을 호되게 나무라고 들어와 벽을 향해 앉아 서럽게 흐느끼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다시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어머님에게 고자질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다음과 같은 일도 있었다. 학급 대항 축구 시합이 있다 하여 우리 반에서는 편을 만들어 밤늦게까지 연습에 열중했다.
이때 나는 자원해서 골키퍼가 되었다. 골키퍼는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나에게 무리가 되지 않았고, 이로써 건강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한동안 축구에 흠뻑 빠져 들었다.
그런데 축구화를 신은 친구가 여간 부럽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학급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면서 축구화를 사 달라고 떼를 썼다. 부모님은 병신 자식이 교내 대회에 출전한다니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나에게 몇 번이나 확인하고, 그래도 믿기지 않았는지 다음날 어머님께서 학교에 나오셨다. 나의 연극은 그것으로 끝났고, 축구 연습도 더 계속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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