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의문사지회장인 허영춘(62)씨 역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거리에서 서명전을 벌이고 있었다. 허씨의 아들 원근씨는 지난 84년 군대 내에서 의문사한 것으로 여겨져 현재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양승규, 이하 규명위)의 군관련 의문사 조사 대상자로 올라와 있다.
당시 군 수사당국은 『허일병이 중대장 등으로부터 심한 꾸중과 폭행을 당하자 총과 실탄을 훔쳐 양쪽 가슴을 총으로 쏜 뒤 숨이 끊어지지 않자 다시 이마를 쏘아 자살했다』고 사건을 결론지었다. 그러나 허씨는 『길이가 긴 M16 총으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고 그래도 힘이 남아 머리에 총을 쏘았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털어놓는다.
지난해 10월 17일 공식 출범한 규명위는 허씨처럼 억울함을 지닌 유가족들이 오랜 기간 투쟁해 이뤄낸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가족들은 1988년 10월 17일부터 이듬해 2월 27일까지 135일간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였고 이어 94년 11월부터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특별법을 청원했다.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별 변화가 없자 이들은 98년 11월 4일부터 이듬해 12월 30일까지 422일간 국회 앞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을 계속했다. 99년 155명의 의원이 특별법을 발의했고 같은 해 12월 28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2000년 1월 15일 비로소 법률이 공포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에게는 힘겹게 걸어온 날들만큼 가야할 길이 더 남아있는 듯 하다. 크고 작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사기간 부족, 조사권 제한 등으로 규명위의 활동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저희들의 사연에는 말로는 다 풀어내지 못할 상처와 억울함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가해자에 대한 보복이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오랜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았을 텐데요…. 저희 유가족들은 단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숱한 의문사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목적으로 의문사특별법에 의해 지난해 10월 발족한 기구다.
규명위의 조사대상인 의문사는 69년 이후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여겨지는 사인이 불분명한 죽음으로 현재 81건의 사건이 조사중이다. 현재 규명위에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과 함께 검찰, 국군기무사령부, 국가정보원 등에서 파견된 현직 수사관 등 모두 50여명의 조사관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규명위는 이제 6개월의 1차 조사시한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기대 이상의 굵직한 성과들이 속속 터져 나오는 등 최근 들어 활동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70년대의 저명한 재야인사였던 장준하 선생과 양심과 비판정신을 지닌 올곧은 학자였던 최종길 교수의 죽음이 타살 혐의가 짙은 것으로 밝혀져 많은 이들이 규명위의 활동에 보다 큰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한다.
의문사특별법은 모든 사건의 조사가 종료되면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그 진상을 공표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많지 않지만 접수된 사건의 상당수는 이미 막바지 조사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규명위의 노력이 제대로 빛을 내기 위해서는 특별법 개정 등 제도상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 대부분이 발생한지 10여년이나 지났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은폐, 조작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할 상황에서 규명위가 진실을 완전히 밝혀내기에는 특별법상 규정된 권한에 한계가 많다는 주장이다.
규명위는 수사권이나 압수수색권, 소환권, 기소권이 없는 데다 국정원, 기무사, 경찰청 등 기관들이 관련자료 제출이나 조사에 소극적이어서 애를 먹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중요 참고인이 출석을 거부하거나 위증을 해도 제재수단이 없다. 또 최대 9개월인 조사기간도 한정된 조사관의 수나 사건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규명위는 6월 임시국회에서 ▲위원회 활동 기한 3∼6개월 연장 ▲조사 불응자 과태료 부과 ▲위증자 형사처벌 ▲공소시효가 지난 의문사에 대한 책임자 처벌 등의 의문사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되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교황청이 지난 3월 7일에 발표한 문헌 「기억과 화해:교회와 과거의 잘못들」은 가톨릭 교회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과거의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 것으로 전세계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 문헌은 과거의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성찰과 함께 이 행위가 지니는 윤리적, 사목적 의미를 제시하며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사의 잘못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가르쳐준다.
이에 앞서 2000년 대희년 선포 칙서인 「강생의 신비」는 기억의 정화를 『백성들이 희년의 특별한 은총을 더욱 더 열렬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여러 표지들 가운데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정화는 과거 잘못을 역사적, 신학적으로 새로이 평가함으로써 그 유산으로 남아 있는 온갖 형태의 폭력과 증오로부터 개인과 공동체의 양심을 자유롭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기억의 정화는 과거와 오늘날에 범한 잘못들을 인정하는 용기와 겸손의 행위인 것이다.
역사적 과오를 규명하는 일과 관련해 규명위 위원인 안병욱 교수(가톨릭대 국사학과)는 「의문사와 의문사 진상규명의 의의」라는 논문에서 『인권침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진실을 알아야 하고, 국가는 억압을 자행했던 과거를 묻어두지 말고 기억하고 항상 유념해야 하며,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규명위 자문위원인 김승훈 신부(서울 시흥동본당 주임)는 규명위의 활동에 대해 『규명위 설립은 교회에서도 오랜 기간 노력하고 기도해온 결과』라고 말한 뒤 『그리스도인들은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 「깨어서 기도하라」는 성서 말씀대로 하느님 나라가 무엇일지를 늘 생각하며 사회에서 좀더 나은 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 양승규 위원장
▲ 양승규 위원장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양승규(67·시몬) 위원장은 의문을 지닌 채 덮여진 사건들을 재조사하는 위원회 활동의 의미를 신앙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이미 지나간 일을 왜 이제서 구태여 들추어내느냐』는 일부 주장에 대해 그는 『규명위의 활동 목적은 가해자의 처벌이 아닌 진실규명』이라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이번 기회는 오히려 가해자들이 오랜 기간 짊어 온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규명위는 진실을 말한 자는 용서하고 죄를 감춘 자는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벌을 가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해 왔다.
『의문사는 우리 시대의 아픔이고 동시에 그 진상을 밝혀 시급히 치유해야 할 상처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고 어느 누구도 이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독재권력의 탐욕으로 얼룩진 의문사의 문제는 반인륜적인 범죄로서 철저히 그 진상을 밝혀 다스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애초부터 의문사규명특별법에서 주어진 규명위의 권한은 20, 30년 전의 진실을 밝혀내기에는 미약하고 제한돼 있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역사적인 당위성과 국민의 염원을 바탕으로 진상규명활동을 철저하게 펴나갈 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양위원장은 믿는다.
『이 일은 저희 조사관이나 제 개인의 힘으로만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도우심과 함께 역사와 진리의 힘을 믿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으며 지금껏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양위원장은 「신학생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하던 한 신학교 학장 신부의 전화를 늘 기억하고 있다며 많은 이들의 기도와 관심에 대해 감사해했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자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사회의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는 일이 신앙인으로서 큰 죄악이라 생각했다고. 성서를 가까이 두고 틈틈이 성서구절을 묵상한다는 그의 집무실 앞에는 『감추인 것은 드러나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입니다』(마태 10,26)는 성서구절이 걸려 있다.
『위원장직은 명예롭거나 권력이 있는 자리도 아니고 물러날 때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유가족과 가해자, 정보기관 어느 쪽에서도 적극 환영받지 못할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판단을 제 행동기준으로 삼지 않고 단지 하느님 앞에 죄를 짓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그는 규명위의 활동이 『불의와 타협하는 삶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협력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