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수원교구장으로 발령 받을 때는 한 10년 정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어느새 23년 동안이나 있게 되어, 주교수품 20주년을 맞이하던 1994년 승계권을 가진 보좌주교를 교황대사관에 요청했다. 그러던 중 1996년 1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후임이신 최덕기 주교님의 임명장이 나왔고 2월 22일에 주교서품을 주었다. 그후 1997년 6월 4일자로 나는 수원교구장직을 은퇴하고 최주교님이 교구 행정을 맡게 되었다.
나는 교구로 보나 교회로 보나 국가로 보나 가장 빛나는 시기에 주교직을 수행했다. 내가 교구장으로 봉직할 때에 우리 수원교구가 빠르게 발전한 것은 좋지만 후임 주교님에게는 좀 미안하다. 내 시기에는 서울대교구에서 전입하는 신자들과 새 영세자들의 관리로 바빴는데 앞으로 후임 주교님은 냉담자, 열심치 못한 신자, 흔들리는 사제들 돌보기에 바쁠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한국의 경제사정이 무척 어려울 때라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교구는 교구대로, 본당은 본당대로 성전신축 등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나는 달콤한 맛만 보고 이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을 후임 주교님께 인계한 것이 조금 마음 아프다. 하지만 이것이 후임 주교님의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하고 나는 다만 힘닿는 데까지 옆에서 열심히 도와 드려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주교단이 젊어지는 시기로, 70대 주교가 주동 역할을 하던 시대를 지나 젊으신 주교님들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실 것이다. 교황청에서 관심있게 바라보는 한국교회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교회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 우리는 신자 개인, 사제, 주교, 수도자 각자의 각성이 요구되는 지역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 젊어지는 주교님들로 인해 한국교회는 더욱 싱싱한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더욱 탄탄하게 건설하게 될 것이다.
덧붙여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국교회에 맡겨진 시대적 사명 중 하나는 바로 북방선교라는 점을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우리 한국교회가 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북방선교는 우리의 지상과제이면서도 이를 실천하는데 있어 충족되어야 할 어려운 전제조건들이 많다.
북방선교는 우리가 먼저 낮추면서 들어가야지, 우리의 생활양식을 그곳에 접목시키려 하다가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그 지역 사람의 환경에 맞게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북한 선교나 중국, 러시아 선교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 시점에서 북한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시대의 상황과 환경을 보고 기다리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며 때가 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북한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국선교의 중요성도 더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의 가톨릭 신앙은 중국에서 들어왔고 우리나라에 들어오신 첫 사제도 중국인인 주문모 신부님이셨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중국은 우리의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 은혜갚음을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일의 계획은 내가 했어도 완성은 하느님께서 하셨다는 점을 가슴깊이 느낀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일에 제동이 걸려 끙끙거리다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 일이 이루어지도록 주위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내가 한 일이 아니고 하느님 편에서 만들어 놓으셨다. 내가 재주를 부려 사람을 설득시켰다거나 힘을 써서 이루어지게 한 일은 전혀 없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어려운 일을 「나」라는 도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하셨다. 그래서 일을 저질러 놓고서도 항상 나중에 생각되는 것은 「나는 도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니까 그분의 섭리를 깨달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하느님께서 부르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으로 가야 한다. 이제 나는 나와 함께 일을 이루는 모든 이들도 하느님의 섭리에 순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초대 수원교구장이신 윤공희 대주교님이 터를 닦아 놓으신 지역 교회의 복음화와 북방선교를 위해 수원교구의 모든 신부님들,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후임 주교님을 모시고 이전보다 갑절의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를 거듭 부탁드린다. 그리고 우리 교구의 가톨릭대학교와 외방선교회, 남녀수도회의 역할이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리라 믿으며 그 발전이 계속되기를 마음으로부터 기원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김남수 주교님께 감사 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전주교구 박성운 신부님의 삶과 신앙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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