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문학은 가톨릭정신이 작품의 골격을 이루고 있어야”
▲ 조창환씨
시집 「피보다 붉은 오후」로 제5회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한 조창환(토마스 아퀴나스?58?아주대 국문과 교수)씨는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주위의 모든 분들과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작품 속에 표현한 가톨릭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제5회 가톨릭문학상 수상작에 선정된 「피보다 붉은 오후」는 조창환 교수의 5번째 개인 시집. 교직에 몸 담으며 다섯 권의 시집을 펴낸 조씨는 이번 작품에 대해 『투병 생활이라는 삶의 고비를 넘긴 후 얻게 된 영감들을 작품에 불어넣고 싶었다』며 『이 과정에서 작고 연약하며 사소한 것들이 지닌 신비한 생명의 힘에 대해 깨우칠 수 있었다』고 피력했다.
『어려운 고비에 닥쳤을 때, 진실로 자기를 버리고 기도하니까 하느님께서 다음 길을 열어주시더군요. 생명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벗어나니 새로운 생명이 왔죠. 생명은 의복처럼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상작 「피보다 붉은 오후」 시집 1, 2부에는 그의 이 같은 내면 세계와 의지가 가득 담겨있다. 특히 모든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 작가는 「생명」의 작은 움직임들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즉, 그의 시에 나오는 「생명」들은 거대하고 위대한 그 무엇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것들이다. 아울러 투병 생활 후의 작품들인 3부에서는 작품을 통해 시인의 병상 체험이 조심스럽게 드러난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덩굴풀 더듬이만 기웃거리는 풍경은 아슬아슬하다/ 실핏줄 같은 말간 줄기 끝으로 허공에서의 도약을 시도하는 등나무 덩굴에 숨은 狂氣(광기) 혹은 傲氣(오기)/ 건너편 기둥, 혹은 높은 천장을 향해 온몸을 던져 고개 내어미는 연두빛 속살을 들여다보면 간밤 별빛 내리던 하늘 꿰뚫어 피울음 솟구치는 기도 응어리진 멍자국들이 보인다/ 풍경은 짐짓 기웃거리는 시늉으로 숨을 고르지만 등나무 잎에 바람 무심히 불 때 온몸이 피리처럼 떨린다』「힘」 중에서)
또한 그의 작품에는 시의 본질적 언어 미학과 아름다운 서정성에 자기 구원의 신앙적 가치가 스며들어있다고 심사위원들은 평하고 있다. 최근 현대 문학의 세태가 정도(正道)를 비웃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조씨는 『본격적으로 가톨릭시즘과 세계관이 담겨있는 문학 작품을 쓰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조씨는 『깊은 신앙심을 지닌 신자 문인들의 더욱 왕성한 활동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학은 우선 작품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톨릭문학은 가톨릭 정신이 작품의 골격을 이루고 있어야 하겠죠. 우리 교회와 사회를 위해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싶습니다』
■ 수상 소감
“존재 전체를 은총으로 인식 그때에 진정한 자유 누려”
가톨릭 신앙을 지닌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이 영광된 상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분에 넘치는 은총을 한없이 쏟아부어 주시는 하느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작아진 마음으로 감사와 기쁨을 바칩니다.
제 다섯번째 시집 「피보다 붉은 오후」에 실려있는 시들은 대부분 3년 전 건강상의 어려운 고비를 겪은 후에 삶의 전체를 긍정하며 존재의 신비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려는 심정을 담은 것들이었습니다.
생의 위기에 부딪쳐 자신을 완전히 낮추고 하느님께 전부를 맡길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것을 저는 체험했습니다.
어려운 병명을 듣는 순간, 까닭 모를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때 제가 대결하려던 것은 육체가 아니었습니다. 육체를 다스리는 분, 운명을 지배하는 분과 맞서고 싶었습니다.
속으로 오랜 울음이 지나간 후 저는 집착이 죄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평화를 얻은 후에 기쁨이 왔습니다. 아주 작은 것들,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 부드럽고 연약한 것들, 변두리에서 힘없이 서성이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고 신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숨쉬는 일의 기쁨이었으며,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심성을 회복하는 일이었으며, 정갈하고 청결한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살아온 과거의 시간과 숨쉬는 현재의 시간이 눈부시게 느껴졌습니다. 바람 속에 지워질 몇 점의 발자국을 남겨 놓은 일이 가슴 저리게 아름답게 생각됐습니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처럼 허무한 삶 속에 놓인 아름다운 발자국 몇점에 관한 은총의 인식이며, 그 은총 속에서 누리는 자유에 관한 기록입니다.
정신의 순정성은 물신적 가치관에 묻혀지고 하느님께 대한 외경과 신성성에의 지향은 인간의 오만과 속물성에 가리워진 오늘날에도 가톨릭시즘은 여전히 인간의 구원과 위안의 통로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문학이 할 일은 바로 그 현실의 위시를 언어로 극복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존재의 전체를 은총으로 인식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문학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맑은 눈물 한 줄기」로 시를 쓰지만, 하느님은 따뜻한 그늘로 세계를 덮으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수상자 약력
1945 서울 출생
1967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2~1978 서울예고 교사
1973 「현대시학」지로 등단
1978 울산대학교 전임강사
1979 전북대학교 조교수
1984~현재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1~현재 미국 오하이오주 보울링그린 대학 한국학 객원교수
▲ 작품
1980 시집 「빈집을 지키며」
1984 시집 「라자로 마을의 새벽」
1986 논저 「한국 현대시의 운율론적 연구」
1992 시집 「그때도 그랬을 거다」
1993 시집 「파랑 눈썹」
1998 논저 「한국시의 넓이와 깊이」
1998 논저 「이육사」
2001 시집 「피보다 붉은 오후」
▲ 상훈
1962 소년한국일보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1966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입선
1985 제17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 심사평 - 한국가톨릭문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구중서
“시의 아름다운 서정성에 신앙적 가치 용해시켜”
「가톨릭문학상」의 수상 대상 범위에는 「가톨릭 신앙」이라는 조건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방적으로 「인간성의 고양」, 「인간 구원의 주제 의식」에 대한 작품으로서의 성취도에 중점을 두고 수상작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의례적으로 「경건주의」, 「죄의 자책」, 「주여, 주여…」 되네이는 타성과 안일성을 경계하는 바입니다.
그러한 경계하고자 하는 경향과는 다르게 조창환 시인의 시집 「피보다 붉은 오후」에서는 「쏟아지는 햇살」, 「날이 선 바람에서 듣는 비명 소리」 등 시상을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담고 있습니다.
「위로 창을 낸 지붕 밖으로 하늘에 내통하기」, 「하늘과 풀밭이 만나 가슴을 쓰다듬는 사랑」도 있습니다.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가 치켜든 팔이 차지 않은 하늘의 넉넉함」도 있습니다. 진정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있는 행복」 같은 것이겠습니다.
이처럼 시집 「피보다 붉은 오후」에는 인간과 우주가 존재의 원형에 대한 실감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거둔 높은 성취도를 아울러 평가하면서 조창환 시인의 신간 시집 「피보다 붉은 오후」를 이번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 축사 - 시인 성찬경
“세계 유일의 가톨릭문학상 수상 축하”
▲ 성찬경 시인
저는 오늘 시상식이 상을 수여하는 분과 받는 분 모두에게 경사라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는 조창환 시인의 입장에서는 더없는 기쁨과 경사이며, 또 훌륭한 시인이 상을 받게되면 그 상이 더욱 빛나고 위상이 높아지므로 시상하는 분 입장에서도 커다란 보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전 세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문학상은 없습니다.이 상은 보편적이며, 마음이 넓게 열려있고 모든 것을 다 포용한다는 가톨릭 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가톨릭문학상은 존재하지 않는데, 명실공히 이렇게 훌륭한 상이 우리나라에서 5회째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입니다.
가톨릭문학상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조창환 시인의 수상을 감축하며, 앞으로도 더욱 훌륭한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덕훈 우리은행장 인사
▲ 이덕훈 우리은행장
존경하는 가톨릭신문사 이용길 사장신부님, 오늘의 주인공으로서 영광된 상을 수상하게된 조창환 시인님, 그동안 심사하느라 고생하신 심사위원 여러분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해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로 가톨릭문학상이 5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역대 수상자들께서는 가톨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숭고한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상을 받는 조창환님은 그동안 교단과 문단에서 많은 활약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 문학계에서 본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져 갈 것으로 확신하며, 우리은행에서는 가톨릭문학상이 가톨릭문학의 발전을 주도해가는 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아울러 75주년을 맞이한 가톨릭신문이 교회의 가르침을 사회에 널리 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해주길 진심으로 바라며 무궁한 발전을 이룩하길 기원합니다.
◈ 시상식 화환 기증자 (무순)
문화광광부 남궁진 장관
우리은행 이덕훈 행장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여규태 회장
평화신문 오지영 사장신부
한국가톨릭문인회
한국시인협회 이근배 회장
현대시학 정진규
부천교육청 김윤배
수맥돌침대 이경복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