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스포츠 축제인 2002 한일 월드컵이 5월 31일 개막, 한 달간에 걸친 32개국 출전국 대표팀의 열띤 대장정이 시작됐다.
월드컵이 열리는 경기장 주변에서는 물론이고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전국 어디에서나 『오, 필승 코리아』, 『대∼한 민국 짝짝∼짝 짝짝』 하는 응원에 빨간 유니폼을 입고 얼굴에는 태극 마크를 그려 넣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교회 월드컵 맞이 분주
교회서도 마찬가지이다. 각 교구에서는 올초부터 다채로운 행사들을 마련해서 월드컵 붐에 일조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은 매주일 영어와 스페인어, 불어 미사를 세 군데서 동시에 봉헌하고 꼬스트홀에서 토요일마다 축하공연도 한다. 역삼동성당에서도 매주 영어미사를 봉헌한다.
전주교구는 중앙주교좌성당 등에서 외국어 미사를 봉헌하고 전동성당에서 치명자산 성지까지 이어지는 성지순례 행사를 전주시 월드컵 조직위와 함께 마련했다.
제주교구는 영문 성지 안내서를 제작,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 비치하고 경기장 인근 성당에서는 영어미사도 거행한다. 굵직한 경기가 열리는 대구에서도 영어미사가 마련되고 리플릿도 제작 배포된다.
수원교구도 외국어 미사를 봉헌하는 한편 「평화의 축구공 모으기」를 실시, 북한과 아프가니스탄에 각각 2002개의 축구공을 전달할 예정이고 홈호스트(Home-Host) 무료민박을 실시한다.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일본교회 역시 월드컵 준비에 관심을 쏟고 있다. 40만명의 외국인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는 일본 교회는 주교회의에서 일본교회 안내책자를 각국어로 제작해 대회장이나 선수단 캠프 인근 성당을 안내한다.
일본은 10개 교구에 캠프나 경기장이 설치돼 있는데 우라와 주교좌 성당에서는 6월 한달 동안 영어미사를 봉헌하고 오사카 교구는 한국어를 비롯한 6개국어로 봉헌되는 미사 시간과 성당 안내 책자를 제작해 각국 대사관, 호텔, 성당에 배포했다.
센다이 교구에서도 6월 8일과 11일, 17일에 센다이 주교좌 성당에서 영어와 스페인어 미사를 봉헌한다.
본선 참가국 대부분 가톨릭
전통적으로 축구 강국들에서는 가톨릭 국가들이 많다.
이번 본선 참가 32개국 중에서 가톨릭 국가는 모두 16개국. 전세계에서 가톨릭 신자수가 가장 많은 브라질(1억4390만명)을 비롯해 멕시코(8966만4천명), 미국(6334만7천명), 이탈리아(5587만7천명), 프랑스(4682만3천명) 등 필리핀(6302만5천명)을 제외한 상위 5개 나라가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
그 외에도 유럽에서 스페인, 슬로베니아, 포르투갈, 폴란드, 아일랜드, 크로아티아, 벨기에 그리고 중, 남미에서 우루과이,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등이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 혹은 가톨릭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나라로 분류될 수 있다.
역대 우승국을 봐도 마찬가지다. 5, 10, 14회 대회에서 우승한 독일을 제외하면 우루과이, 이탈리아, 브라질,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 모든 나라가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독일도 전통적으로는 가톨릭 국가였으나 종교개혁이후 개신교와 가톨릭의 비율이 비슷하게 되어 가톨릭의 뿌리가 깊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본선 참가국들이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들이므로 선수단 역시 가톨릭 신자들이 많고 경기 때마다 성호를 그으면서 승리를 기원하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국인 폴란드 축구 대표팀의 예지 엥겔 감독은 교황으로부터 받은 십자가 목걸이를 애지중지하면서 『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며 『이 십자가를 꼭 쥐고 있으면 항상 힘과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스포츠 사목’ 계기 마련해야
한국교회가 월드컵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한국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이며 『인류와 분단 국가인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염원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기를 기원하기 때문』(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 월드컵 담화문)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를 우민화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진지한 사람들에게 스포츠는 경외시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스포츠는 국가와 민족, 인종간의 대화와 나눔을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000년 10월 29일 체육인의 대희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스포츠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젊은이들에게 성실과 인내, 우정, 나눔, 연대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는 현대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으로 인류의 새로운 기대와 필요에 따른 것이며 「시대의 징표(sign of the times)」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스포츠가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상업주의에 바탕을 둠으로써 참된 스포츠 정신을 왜곡하고 「인류의 평화와 화합의 축제」라는 본래 의미를 구현하지 못하고 그늘에 가려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외면하도록 대중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고교와 대학시절 센터 포워드로 선수 활동을 했던 교황은 축구가 인간 존엄성을 증진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인생의 위대한 가치들을 배우고 값진 인간 공존의 기초가 되는 덕목들을 전파하도록 격려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0년 5월 8일 유럽 축구 연맹 대표들에게 한 연설 중에서)고 당부한다.
특히 축구가 참된 스포츠정신 외의 다른 요소들, 특히 경제적 요소에 압도당해서는 안된다며 스포츠 관계자들의 엄중한 책임도 함께 촉구한다.
교회가 현대 스포츠의 명암을 함께 주목해야 하면서도 월드컵, 나아가 스포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은 복음화의 측면에서도 매우 현실적인 과제이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이미 「스포츠 사목」에 일찍 눈을 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스포츠를 선교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많은 성과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도 스포츠 사목에 대한 시대적인 요청을 파악하고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목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외국인 가족이 6월 2일 오전 11시 서울 역삼동성당에서 영어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통역 자원봉사 이순래씨
“축구도 봉사도 파이팅 따뜻한 형제애 나눠요”
▲ 이순래씨
월드컵에서 통역 봉사자로 활동하는 이순래(헬레나.68)씨는 외국인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으로 통역 봉사자로 나섰다.
이씨는 무엇보다 젊은 시절 바쁘게 살아온 탓에 봉사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이제는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고.
이미 4년 전부터 서울시청 통역 봉사자로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온 이씨는 서울 시청이 모범적인 봉사자들에게 수여하는 동메달과 은메달을 잇따라 받았고 조만간 금메달을 받는다.
『돌이켜 보면 정말 바쁘게 살아오다 어느 날 퇴직하고 보니 다른 이들을 위해 참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갖고 있는 능력으로 봉사활동을 할 만한 것을 찾다 보니 통역 봉사자로 나서게 됐습니다』
이순래씨도 열렬한 축구팬. 현 한국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는 최근 잉글랜드전과 프랑스전에서 골을 터뜨렸던 박지성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국민들의 염원이 모아지고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쳐 이번에 한국이 16강에 들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저도 외국인들에게 성심 성의껏 통역 봉사를 해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코리아 파이팅!』
▣ 홈호스트(무료민박) 동참 김순옥씨
▲ 김순옥씨
수원교구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월드컵 운동본부」가 이번 월드컵을 위해 추진 중인 홈호스트(무료민박)에 동참한 김순옥(크리스티나.50)씨는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 교회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번 월드컵 수원경기에는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 포르투갈, 우루과이, 코스타리카들이 참여해 외국의 가톨릭 신자들을 대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27년째 영어 교사로 교직에 몸담아온 김씨는 그동안 신자로서 본당 봉사활동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해 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그래서 이번에 수원교구가 월드컵을 맞아 무료 민박 가정 신청을 받는다고 해서 선뜻 동참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이곳에 기거할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경기장까지 차로 데려다 줄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왕 봉사하기로 마음먹은 일인만큼, 외국인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본당 활동에 소홀했는데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참여하고 싶었어요.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시는 많은 분들을 뵈면 죄송스럽고 부끄럽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도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