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꽥꽥꽥…꽥꽥꽥…』
여름 소낙비가 푸른 논을 시원하게 적시고 지나가자 오리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잠시 비를 피했다가 이러저리 왔다갔다 논을 헤집고 다니면서 농약과 농부의 일손을 대신하며 해충도 잡아먹고 김도 매면서 벼농사 짓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 넓디 넓은 농토에는 구역마다 『생명을 살리는 논』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오리농법으로 무농약 벼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친환경농업 공동체인 고두미마을엔 바로 생명농업을 실천하고 권장하는 「이방인(?)」 농사꾼 조관호(바르톨로메오?40)씨가 있다. 서울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던 조씨는 96년말부터 가톨릭농민회 일을 하다가 땅을 지키러 시골로 들어간 「귀농인」이다.
지금은 이 지역에서 생명농업을 이끌어가는 젊은 일꾼이지만 조씨와 몇몇 도시사람들이 처음 귀래리에 자리잡을 때만 해도 이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농촌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시골 한옥집은 양옥집으로 바뀌는데, 이 젊은 사람들은 시골로 들어와 한옥집을 다시 짓고 농사일을 자청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불신은 조씨의 한결같은 생활로 씻은 듯 사라졌고 이젠 오리농법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할 정도가 됐다.
누군가는 꼭 해야되는 일이기에 주저함없이 농사일을 선택했다는 조씨. 귀농 7년째, 3000여 평의 논농사와 2000여평의 밭농사를 짓고 있지만 여전히 서툰 농사꾼이라고 자청한다.
『성공했냐구요? 농사짓는 일은 실패와 성공의 차원이 아닌 거 같아요. 그저 하루 하루 살면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적응해 가는 과정일 뿐인걸요』
쌀수입개방, 물가 불안정 등 농민의 시름은 늘어만 가지만 조씨는 당분간 어렵더라도 긍정적으로 농촌의 현실을 내다본다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농약으로 땅을 죽이고 약이 뿌려진 먹거리로 도시민을 죽이고 농민 스스로가 죽는 기존의 관행농업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농약 덜 쓰고 무농약 농산물을 키워내고 보급하겠다는 소신을 지켜갈 것이라고.
『우리에게 「귀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만큼 농촌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정부도 친환경농업을 권장하고 있고, 2005년까지 국내 유기농을 2% 늘리겠다는 정책을 내놓잖아요』
막막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저버릴 만큼 절망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조씨는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농촌복지와 생명농업에 교회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아들 한별(아모스,9)이와 딸 한새임(7)에게 농사일을 물려줄 수 있길 기대한다는 조씨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시 농업사회로 돌아갈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까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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