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8월 30일자로 은퇴했다. 계산주교좌본당 주임으로 2년넘게 바쁘게 살다가, 아니 1950년 11월 21일 사제품을 받고 46년동안 온갖 역경을 헤쳐나오면서, 그리고 다양한 사목 일선에서 동분서주하던 삶에서, 어느날 갑자기 직책과 일이 없어졌다. 처음 두세달동안은 정말 어려웠다. 굉장히 답답하고 허전했다. 「이것으로 인생이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뭘 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두세달 방황아닌 방황기를 끝내고 기도와 미사가 중심이 되는 일상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직무에서는 은퇴했지만 성직자 신분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번 사제는 영원한 사제로서 남은 삶을 통해서도 「신부는 이런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도와 미사가 중심이 되는 하루 하루의 삶이 사제에게 있어 새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공적인 직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기도와 미사로 하루의 삶을 바치는 「새로운 삶」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내 일상의 삶을 받쳐주는 또 한가지는 교회 서적을 가까이 하는 일이다. 가톨릭신문은 물론 교회 잡지와 단행본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교구에서 고문서 번역을 맡겨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 안세화 주교 시절(1911년 이후)의 공문서와 통계표 번역을 마쳤다.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기록된 원본을 원고지에 옮기고 다시 컴퓨터 작업을 통해 출력된 것을 마지막으로 교정하고 있다. 고문서라 번역도 쉽지않지만 방대한 분량이라 진도가 늦다. 그나마 이정도 건강할 때 빨리 마쳤으면 좋겠다.
또 하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네 가꾸기」다. 뭐 거창하게 말해서 「동네 가꾸기」지 실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잡초나 뽑고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나 줍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젊은 부부들과 아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누구 하나 손대는 이 없어 군데 군데 잡초가 무성하고, 청소부 아니면 휴지 하나 줍는 꼴을 못봐 요즘의 세태를 여실히 보면서 살고 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없이 처음에는 혼자 사는 「이상한 영감」 쯤으로 보곤 했다. 이제는 『저 할아버지 신부님이래』라는 말이 쫙 퍼져 알만한 살람은 다 아는 듯 했다. 그래서 내 행동거지 하나 하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항상 신부임을 잊지않고 「신부는 이런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끔은 교구 행사에 참석하고 원하는 신자들에게는 개별적인 고해성사도 주고 있다. 혹은 반모임에 초청 받기도 하고, 냉담자를 만나 설득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도 한다. 요즘 신자들을 만나면서 우려되는 것은 교의나 성서 말씀을 받아들임에 있어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평신도 모임이 늘면서 신부가 일일이 다 찾아다니며 지도할 수 없어서 이겠지만 자기 편의식, 자기 합리화식 논리가 너무 강한 것 같아 걱정이다. 나아가 윤리의식, 죄의식이 희박해져 가는 현상도 쉽게 느껴진다. 굳이 종교적인 윤리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상식적인 선에서 보더라도 선과 악의 구분이 분명하건만, 명색이 신자라는 사람들이 남의 불행을 딛고 자신의 행복(겉 보기에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6월 24일 사제품을 받은 새 신부들이 얼마전 인사하러 오겠다며 전화를 했다. 나에게는 손자뻘 되는 나이들이다.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줄 모르겠다. 하지만 22명이나 되는 대군이라 번거로울 것 같았다. 『내가 가는 게 편할 것 같다』고 말하고 신학교로 찾아갔다. 집에 와서 삐죽 인사만 하고 가느니 만나서 얘기나 조금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새 신부들을 만나 50년넘게 사제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네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우리는 저 세상에서의 복을 바라며 신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하느님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수 없다. 확실한 믿음과 선택으로 사제의 길을 간다는 이 사실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즉 신앙의 기본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물질이 필요는 하지만 거기에 예속되어서는 안된다. 사제로서의 삶이 생활의 수단이나 방편 혹은 직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검소하게 살아야한다. 세번째는 성 문제다. 성은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강한 본능 중의 하나이다. 신부는 성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다. 극복하려고 노력하겠다는 사람이다. 쉽지않다. 성적인 환경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그런 유혹에 떨어질 위험이 너무나도 큰 현실이다. 나도 고민하며 살아왔다. 잘 다스려야 한다. 너희 스스로가 「독신」을 선택한 것 아니냐. 나중에 가서 『이럴줄 몰랐다』고 핑계 되지말라. 신자들의 눈은 속일지 몰라도 하느님은 속이지 못한다. 네번째는 보람을 느끼며 바쁘게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기계화 형식화 습관화 된 삶은 신부로서 실패한 삶이다. 무엇인가 허전하고 만족스럽지 못하고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사제로서의 삶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 52년동안 사제로서의 삶을 돌아보면서 종종 최선을 다해왔는지 반성해본다. 소신껏 살아왔고 후회없는 삶이었지만 나름대로 고통이 컸던 삶이었다. 어찌보면 기쁨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았던 삶이었다. 반면 이런 고통을 통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절대로 미개하거나 무식하다고 해서, 가난하거나 못생겼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하느님 앞에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내 이웃에 대해 눈감을 때 어찌 그런 사람을 신자라 할수 있겠는가? 입으로만 형제적 사랑이니 공동체니 하면서 속은 차디찬 얼음같은 신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참 「교우」가 그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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