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두 가지가 그것인데 우리가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이유는 바로 「욕심」입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매력적이고 쉬우며 때로는 자신에게 더 많은 현실적 이득을 가져오고, 쾌락과 즐거움,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찬사와 격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야할 일」들보다는 「하고 싶은 일」들이 관심의 우선 순위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나 가정의 위기도 바로 각자가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야할 일」에 눈감고 「하고 싶은 일」에 관심과 열정을 낭비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원 소작인들에 대한 우화로서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결과를 보여 줍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도지로 주고 떠났다가 포도철이 되자 도조를 받기 위해 종들과 아들을 보냈으나 소작인들은 파견된 자들을 때리고 죽였기 때문에 결국 주인은 악한 소작인들을 죽이고 다른 농부에게 포도원을 도지로 준다는 내용으로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마태 21, 43)』라는 하느님의 새로운 계획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이야기는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서 백성의 원로들과 대사제들을 향한 말씀이라는 점, 그리고 포도원 주인은 하느님을, 소작인은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층 인사들을, 그리고 포도원은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오늘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비유는 먼저 하느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일차적인 임무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의 의무는 먼저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백성은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리에 대응하는 의무를 준수할 때 하느님 백성으로서 신분은 유지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바는 왜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쳐두고 이방인들을 포함한 교회를 새로운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돌보시게 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그 이유를 소작인들이 주인의 종과 아들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
주인이 종들과 아들을 파견한 이유는 「소작인으로서 자신들이 해야할 최소한의 일」의 결과를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소작인으로서 당연히 내야할 「도조」에 해당하는 그들의 임무를 깨우쳐주기 위해 하느님은 계속해서 예언자들과 당신 아들을 이스라엘에 파견하신 것이고, 오늘날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주인의 종들과 아들을 죽입니다. 즉 그들의 선포와 자신들이 해야할 의무를 지적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이유는 도조를 바치기 싫어하는 마음, 그리고 포도원을 통째로 집어삼키고자 하는 검은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소작인들의 불가능한 「욕심」이 하느님의 종들과 아들마저 죽이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모습은 20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반복 재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회창씨 아들의 병역 비리 사건이나 현실 정치 권력에 관계된 비리, 그리고 북한에 대한 4000억 지원설 등이 어느 하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설만 난무하는 이유도, 또 우리 사회가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 향락 퇴폐사업이 최고의 사업으로 기승을 부리고, 정당함보다는 술수가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바로 「해야할 일」 보다는 이해당사자들의 「욕심」을 우선하는 이스라엘 지도층 인사들의 잘못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종교의 지도층 인사들에게서 똑같이 증폭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바는 우리 사회에 짙게 물들어 있는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게 하는 원인인, 「욕심」이 가지는 「어둠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과 아울러 우리 자신이 바로 「악한 소작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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