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황혼 무렵 서울 적십자병원 한 병실에서는 애틋함이 밴 성가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병실을 지나치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들어 놓은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다시 가족의 품에 한발 다가선 서병길(요셉·43·서울갈현동본당)씨의 보례(補禮)식.
말기 직장암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의 문턱을 밟는 아빠 서씨의 보례식을 침대 곁에서 지켜보던 둘째 정은(초 5)양의 눈에서는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아빠가 잠시나마 더 자신들 곁에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맏이 정원(13)이는 막내 정아(6)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하느님…, 조금만 더…, 저를 아이들 곁에 있게 해주세요」
보례식 내내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은 서씨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다. 불쌍하기만 한 막내 정아가 철이 들 때까지 만이라도 아이들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여느 아빠들의 평범한 바람.
카센터를 운영하며 단란하기만 하던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IMF로 사업이 기울면서였다. 아빠는 99년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병의 징후를 가볍게 여기고 치질인 줄로만 알고 일에 매달렸다. 아빠가 지난해 암 진단을 받고 병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 엄마는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댕그라니 던져진 세 자매. 정원이는 그 때부터 엄마 아빠 두 몫을 해야 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안 빈첸시오회 회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가사일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종교라곤 가져볼 생각도 않았던 이들에게 하느님나라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그러던 지난해 5월 소진될 대로 소진됐는지 아빠 서씨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급하게 대세를 청했다. 성가정을 꾸미고 싶은 이들의 마음이 통했는지 「요셉」이라는 세례명이 주어졌다. 그리고 나서 의식도 없이 실려간 병원,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몇 주간은 거의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버텼다. 살이 녹아내려도, 다른 부위로 전이된 암세포가 격통을 던져주어도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저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아픔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게 됐으니까요』
하루종일 누워지내다시피 하는 병상, 그의 손에서는 묵주가 떠나지 않는다. 가끔씩 병원을 찾아 병실 한 켠에서 쪼그리고 자고 가는 아이들, 꿈속에서 아빠와의 행복한 삶을 찾아 헤매는지 모른다.
밤이면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우는 정아를 안아 재우다 보면 어느 새 자신의 눈에도 눈물이 괸다는 정원이는 아빠가 돌아올 날만 손꼽고 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만들어 먹고 싶어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정은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정아, 그 가운데 전교에서 성적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정원이는 의사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아빠가 나으시면 꼭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태어나 지금껏 한번도 나서보지 못한 세 자매의 여행, 그 꿈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도움주실 분=한빛은행 702-04-107874(가톨릭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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