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통괄적인 최고 사목자인 동시에 모든 인류의 영적인 아버지이다. 교회가 세상 안에 있듯이 교황 역시 세상 안에서 사도의 후계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교회사 뿐만 아니라 세계사 안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인류의 발걸음을 이끌어왔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해온 교황들의 자취를 살펴본다.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편교회를 돌볼 임무를 받은 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순교한 후 박해를 거쳐 그리스도교는 로마와 유럽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교회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단과 싸워나가면서 신학과 교회의 여러 가지 제도와 관습들의 토대를 다져갔다.
성 대 레오 1세 교황(440~461)은 교황의 수위권을 강조하고 행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교황의 수위권을 확립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부터 교황은 교회 뿐만 아니라 서유럽의 수호자로 등장했고 게르만 민족을 교화하고 수도회와 성당을 통해 로마 문화를 전수했다.
특히 6세기말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은 영국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교황이 세운 수도원인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사들을 597년 영국에 파견, 성 아우구스티노와 동료 수사 40여명은 초대 영국교회의 창시자가 됐다. 뿐만 아니라 교황은 로마 주교에 대한 동로마 황제의 압력을 물리쳐 중세 유럽의 형성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동로마 황제의 후광을 업고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들은 동방에서 로마 교황과의 동등한 수위권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도전함으로써 결국 동서 양 교회가 1054년 분리되기까지 교황들은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갈등에 대응해야 했다.
중세에 접어들고 왕권이 교권을 간섭하면서 잦은 충돌이 발생했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이 강력해지고 칼 대제가 교황 성 레오 3세에 의해 서유럽 황제로 대관식을 받았고 동프랑크(독일)도 개종해 오토 대제가 교황 요한 12세에 의해 황제로 대관되고 신성로마제국을 형성함으로써 교권에 깊이 간여했다. 이에 따라 7~10세기 교황들은 정권의 비호와 간섭으로 수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11세기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1073~1085)은 1076년 하인리히 4세 황제을 파문해 굴복시킴으로써 교권을 왕권에서 해방시켰다.
중세문화의 절정기를 이룬 13세기를 지나면서 14세기 여러 명의 대립 교황들이 출현함으로써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콘스탄츠 공의회로 이교사태가 수습됐지만 약화된 교황의 지위와 함께 문예부흥사조와 지리상 대발견 등에 이어 종교개혁이 뒤따른다.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를 개최한 바오로 3세 교황(1534~1549)과 뒤를 이은 성 비오 5세,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교황 등은 교회의 개혁과 쇄신에 힘을 기울여 교회는 다시금 활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정교분리사상의 도전,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승리, 그리고 천년 동안 유지돼온 교황령이 1870년 이탈리아에 합병됨으로써 교황의 속권은 영구히 무산됐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의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예언자적인 사명에 충실하려는 노력은 어떤 제도적인 영향력이나 세력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더욱 깊어졌다.
비오 9세 교황(1846~1878)은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지권을 신조로 선언했다. 뒤를 이은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은 특별히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침을 보여주었다.
비오 11세 교황(1922~1939)은 공산주의를 단죄하고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발흥한 전체주의들에 대해 교황은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특히 공산주의에 대해 별도의 칙서를 발표해 단죄했다.
비오 12세 교황(1939~1958)은 동유럽이 공산화되는 뼈아픈 고통을 겪었다. 즉위한 해 9월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기까지 교황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이탈리아가 참전해 로마가 위험에 처했으나 교황은 로마를 떠나지 않아 로마가 전쟁의 피해로부터 피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요한 23세 교황(1958~1963)에 이르러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된다. 시대의 필요와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한 이 공의회는 현대 교회의 토대를 놓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뒤를 이은 바오로 6세 교황(1963~1978)은 공의회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요한 바오로 2세 현 교황(1978~)은 근대와 현대 교회사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혁의 한가운데 선 세계적 인물이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역대 교황들과는 달리 전세계를 누비며 평화의 사도로서 「행동하는 교황」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거리의 각국 순방에 나서왔다. 공산화된 폴란드 출신으로서 러시아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을 통해 냉전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초석을 놓았다. 80을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여전히 뜨거운 열정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 교황은 누구인가?
교회 최고 사목자
세계 주교단 단장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서는 교황을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서방교회의 최고 사제이자 이탈리아 수석 대주교인 교황은 국제법적으로 바티칸 시국의 원수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교회 안에서는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며 현세 교회의 최고 사목자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주교, 대수도원장 등 본래 지역교회 최고 장상을 일컫던'교황(Papa 아버지)' 이라는 용어는 8세기 이후부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 그레고리오 7세 교황 때부터 교황에게만 독점적으로 쓰여졌다.
교도권을 비롯 신품권과 통치권을 갖는 교황은 교황령, 회칙, 사목교서 등 문서와 교황직위로 교도권을 행사하며 이같은 교황의 권한은 무류성을 지닌다. 또 교황의 통치권은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직접 관련되는 모든 일에 해당되며 주교들은 물론 모든 신자들에게 그 권한이 미치게 된다. 아울러 교황의 통치권, 즉 수위권은 공의회보다 더 높은 최고의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교황직은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한 베드로 사도에서부터 현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264대째 이어져 내려오면서 가톨릭 교회의 정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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