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마음을 졸이게 하던 비구름의 세력이 약해지고 동해 먼 바다 쪽으로 비켜갔다. 비상경계령 해제. 이틀 비상근무를 각오했는데 요행히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부산 지방 기상청. 일년 365일 긴장을 늦출 순 없지만 특히나 장마철이면 매시간 초긴장이다. 집중호우는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재난을 몰고오는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98년에도 미처 예고하지 못한 사이 집중호우로 지리산 등산객 수십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불행이 있었기에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최근엔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기상예보의 정확도가 크게 높아졌다. 24시간 기상 레이더, 위성 등으로 기상변화를 관측하고 실시간 예보를 한다. 이렇게 정확한 예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측정 장비의 관리.
경력 25년째인 부산 지방 기상청 권규철(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부산 괴정본당·52) 사무관은 기상 관측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총괄하고 있다.
『기상예보를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기상 레이더를 비롯해 초고속 통신망, 수치예보용 컴퓨터 등 모든 자동 기상관측 장비들의 효율적인 관리가 필수죠. 밤이고 낮이고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즉각 호출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권사무관도 잠을 자다가도 미사를 봉헌하다가도 불려나간 일이 종종 있다고. 하지만 그는 언제 어느때 불려나가도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불평 한번, 인상 한번 찌푸린 적인 없다. 그래서인지 직장 내에서도 겸손하고 책임감이 강하기로 칭찬이 자자하다. 부산시 구덕산 해발 540미터 고지에 위치한 기상레이더는 특별한 일이 없고, 당번이 아닌 날에도 매일 꼼꼼히 점검한다. 덕분에 가족들도 구덕산 레이더 기지까지 오르는 일이 매일의 등산코스가 됐다.
25년간 국가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늘 성실히 일해온 권규철씨는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한결같다.
「냉담」이란 말은 생각해본 일도 없다는 권씨. 잦은 전근과 비상시엔 2교대로 이어지는 근무, 특히 6월과 10월 방재기간으로 설정돼 특별근무 체제에 들어가는 바쁜 일상에서도 주일미사를 거른 적은 없다.
82년 영세 후부터 지금껏 각종 봉사활동이며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비롯해 제단체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 성서말씀 나누기도 열심이다.
그는 『저를 필요로 하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그저 매일 하느님 나라에 갔을 때 모습을 기억하며 알곡이 아니라 쭉정이가 돼 불에 던져지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말한다.
권규철씨는 신앙생활을 이야기할 때면 잊혀지지 않는 이름 석자가 있다. 20여년 전, 어렵게 마련한 전세집이 이미 저당이 잡힌 집인 줄도 모르고 속아 전세금을 하나도 건지지 못한 채 쫓겨나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전세집 매매를 중개했던 부동산 중개인 할아버지가 새 세입자를 설득하고 또 자신이 모아뒀던 돈을 보태 작은 방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신자였던 그 할아버지는 자신도 넉넉치 않은 살림을 꾸리고 있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늘 돕는 열심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할아버지 모습에 권씨도 스스로 천주교에 입교하게 됐고 현재 쌍둥이 아들 중 큰아들은 신학교에 입학해 성소의 꿈을 키우고 있다.
『늘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걱정한다』는 권씨. 수백번 정확한 예보를 하더라도 단 한번 잘못 판단하면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초래하는 매순간을 오늘도 성실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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