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4월 21일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무아(無我) 방유룡 신부에 의해 창립됐다.
한국인의 심성과 순교자들의 피로써 증거한 삶을 실현하고자 했던 방신부는 1900년 돈독한 천주교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와 영국공사관 통역관이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방신부는 버릇없고 교만한 행동 때문에 신학교에서 「종로깍쟁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였다.
그러나 방학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방신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신학교 생활에 임했고, 수사처럼 침묵과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 때문에 동료신학생들이 '방수사'라고 부를 정도였다. 완덕의 삶을 살기 위해 수사가 되길 결심한 방신부는 일제 치하에서 잃어버린 민족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한민족의 정서에 맞는 수도회를 만들고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설하게 됐다.
한국교회의 신앙선조인 순교자들의 영성을 산다는 목적으로 수녀회를 창설한 방신부는 이어 53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57년 복자수녀회 3회를 세웠다. 또한 1962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공동체인 기혼여성들을 위한 한국순교복자빨마수도회를 창설, 한국순교복자수도회 대가족을 이뤘다. 이후 방신부는 57년 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86년 선종할 때까지 수도사제의 길을 걸으면서 무아(無我)이신 그리스도를 따른 삶을 살았다.
순교복자회의 영성은 자생할 수 있었던 한국교회의 순교역사와 순교자들의 신앙에 근거한다. 방신부는 서양의 뿌리깊은 그리스도 사상을 동양사상의 그릇 안에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영성을 담아내고 있다.
순교복자회의 영성 「면형무아(麵形無我)」는 밀떡이 모두 녹아 없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성체를 이루듯 자신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경지를 뜻한다. 즉 면형무아는 자기비움의 정신, 나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른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는 삶이다. 이것은 곧 순교자들이 죽음으로서 자기를 버리고 신앙을 증거한 것 처럼 오늘 우리 삶 안에서 자기를 비우고 살아갈 것을 말하고 있다. 방신부는 이 「면형무아」에 도달하기 위해 침묵(沈默)의 길, 사랑의 대월(對越), 점성정신(點性精神)을 강조했다. 이는 어떤 특정 덕행이나 봉사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덕행이나 봉사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면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점성정신」은 일상 안에서 순간 순간 성화한다는 정신이다. 방신부는 만물의 기초가 되는 점(占)의 성질처럼 영성생활도 점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당부했다.
방신부는 또 작은 일, 작은 순간을 성화하기 위해서는 「정성스러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 앞에 정성스러운 태도로 대령하고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만나는 것, 일을 정성스럽게 처리하고 모든 행동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
『점성정신이 있어야 침묵을 하게된다. 침묵은 빛이다. 이 빛은 이 양심을 비추는 것인데 영혼의 눈도 있고 육신의 눈도 있다. 부활초는 큰 빛이요, 우리는 작은 초를 가지고 불을 붙인다』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침묵을 강조한 방신부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그분과 마주본다는 의미를 지닌 「대월」을 통해 정화된 영혼이 하느님과 인격적인 친교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영성에서 볼 수 있듯이 순교복자회는 한국적 토양 위에 그리스도교 영성을 실현하고 있으며, 순교자의 정신을 매순간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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